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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e칼럼

소금이 맛있다

중앙일보

입력

16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소금을 금보다 비싼 고급 사치품으로 여겼다. 그래서 귀한 손님을 초대하면 음식에 소금을 듬뿍 넣어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먼 곳에서 손님이 오면 환영의 뜻으로 쟁반에 보리이삭과 소금을 담아 대접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하셨습니다.’라는 뜻이다.

요즘은 소금을 특별히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도 셰프들은 음식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소금을 빼놓지 않는다. 보통은 소금을 ‘짜다’고 표현하지만 소금 자체를 먹어보면 각기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바닷물의 수분을 증발시켜 얻은, 우리가 굵은 소금이라 부르는 천일염을 한번 씹어 먹어 보라. 짠 맛 속에 특유의 향과 감칠맛이 있다. 이런 희미한 맛의 차이는 음식의 맛 전체를 결정 짓기도 한다.

셰프들이 선호하는 소금 중 하나가 프랑스의 게랑드 소금이다. 내가 아는 한 셰프는 이 소금을 와인셀러에 모셔두고 사용한다. 소금의 수분과 상태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국산 천일염과 비슷한 방법으로 프랑스의 게랑드 염전에서 생산하는 이 소금은 세계 제일의 천일염으로 알려져 있다. 요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세계적인 특산물이다. 소금 결정체 모양이 아름답고 한 알을 통째로 씹어 먹어도 짠맛이 그리 심하지 않다. 통후추처럼 갈아서 쓰면 향과 감칠맛을 모두 느낄 수 있다.

국내산 천일염 역시 맛과 영양 면에서 게랑드 소금에 뒤지지 않는다. 깊은 맛을 내고 해수의 미네랄이 담겨 있으며 정제염에 비하면 염화나트륨 함량도 적다. 목포대 천일염 생명과학연구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해남 함초밭 천일염은 프랑스 게랑드 염전 천일염 보다 칼슘과 마그네슘 함유량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밖에 국내산 천일염의 가공염은 고지혈증과 동맥경화, 당뇨 등 생활 습관병의 원인이 되는 사염화탄소의 산화반응을 억제해 간 보호 등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보고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천일염은 한동안 식용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바닷물의 증발과정에서 불순물이 들어가거나 유해물질이 잔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1963년에 식품이 아닌 ‘광물’로 분류된 것이다. 그래서 천일염은 지난 45년간 김치, 젓갈, 장류를 담글 때에만 종종 사용하는 것이 전부 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천일염이 무해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며 오해는 풀렸고 올해 3월, 천일염은 다시 ‘식품’으로 인정받게 됐다.

모든 음식에 소금이 빠져 있다고 생각해 보라. 요리가 온통 민숭맨숭, 밋밋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꼭 필요한 것을 빗대서 ‘빛과 소금’이라 하듯 소금은 식탁에서도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맛있는 소금을 밥상에 올릴 수 있게 된 것이 새삼 기쁘다.

김은아 칼럼니스트 eunahstyl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