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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간첩 동해안 침투 발견보고에서 작전까지 상황전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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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8일 오전1시20분.강릉해안 남쪽 9㎞지점에서 해안을 순찰하던 철벽부대 173연대 2대대 소속 박만권(朴萬權.24)일병은 칠흑같은 암흑 속에서 커다랗고 시커먼 물체를 발견했다.물체는 오징어잡이 배에서 비치는 불빛에 희미하게나마 반짝거렸다.
순간 朴일병은 『뭔가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朴일병은 일단 초소장 양대길(楊大吉.24.학군34기)소위에게 보고했다.초소순시를 하던 楊소위는 황급히 현장으로 달려갔다.다행히시커먼 물체는 해안전방에서 불과 50지점 떨어진 암초에 걸려있어 어둠속이지만 육안으로도 확인이 가능했다.『잠수함같기도 한데….』 楊소위는 의아심과 놀라움이 교차했다.楊소위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곧바로 연대에 보고했다.2시15분.연대장과 연대정보과장,5분대기조등이 긴급출동,물체에 다가갔다.그런데 갑자기물체에서 『쾅』하는 굉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5 분대기조는순간 움찔했다.물체에서 더이상 반응이 없기를 5분여.대기조는 「괴함」주변을 경계했다.
곧이어 나온 군.안전기획부등으로 구성된 합동신문조는 해안가를샅샅이 수색했다.그 결과 간첩이 침투했음을 확인해주는 발자국을3시40분에 발견했고 4시49분 해군에 의해 북한 잠수함임을 최종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잠수함이 발견된 것 자체가 원체 늦은데다 잠수함 가동이 불가능한 사실을 깨달은 북한 정찰국 소속 20명은 이미현장을 멀리 벗어나 있었다.
서울의 김동진(金東鎭)합참의장 한남동 공관에는 4시40분에야상황이 보고됐다.『북한 잠수함이 침투했습니다.』 金의장은 부랴부랴 전투복을 걸치고 국방부 지하벙커 군사지휘본부로 향했다.金의장이 지하벙커에 도착한 시간은 5시.金의장은 최고 경계태세인「진돗개 하나」발령부터 지시했다.
국방부는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金의장은 지휘본부 요원들에게『여러 상황으로 보아 북한의 도발임에 틀림없다.일사불란하게 대처하라』고 명령했다.이어 그는 『민.관.군 공동협력은 물론 주민신고를 각별히 당부하라』고 지시했다.金의장은 즉시 오영우(吳榮祐)1군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었다.『정신 똑바로 차리고 작전에차질이 없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해요.』 이어 이양호(李養鎬)국방장관과 군수뇌들이 속속 국방부로 들이닥쳤다.연거푸 울려대는 군 전화소리,무전기소리,장교들의 고함소리,속속 들어오는 상황보고….국방부 전체는 전시상황을 방불케 했다.
***국방부 戰時상황 방불 5시10분.「진돗개 하나」 발령과함께 전군에 경계령이 내려졌고 검문검색이 강화됐다.사후약방문 격이지만 그래도 해야만 하는 조치였다.이때까지만 해도 강릉시민들은 이같은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새벽잠을 즐기고 있었다.
한편 강릉의 합동신문조는 수색작업 끝에 간첩이 남긴 엄청난 유류품을 발견했다.해당화껌 1통,황색구명조끼 1벌,국방색 항공점퍼 1벌,녹색 티셔츠 4벌등.발견장소는 인근 해안도로상이었다. 7시25분 요원들은 조심스럽게 잠수함 내부로 진입했다.적은한명도 없었다.그러나 체코제 기관총 1정과 AK소총 1정,탄약1백여발을 발견했다.또 「기필코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내용의 복사용지 1장도 발견했다.요원들은 이들이 단순한 간첩이 아님을직감할 수 있었다.
***“기필코 임무완수” 쪽지 『발자국으로 보아 10여명이 침투한 것같습니다.간첩들은 국방색 항공점퍼 1벌과 티셔츠 4벌,권총.소총실탄 75발등 과거에 비해 많은 유류품을 남겼으며 유류품을 파묻지 않고 공개행동에 들어가는등 특이한 행동을 보여단순간첩은 아닌 것같습니다.』 요원들은 서울로 이같은 상황을 보고했다.
수색작전명령이 떨어진 것은 7시30분.간첩들이 도주한 곳으로보이는 강릉시강동면 청학산 일대를 중심으로 대규모 병력이 투입됐다.군관계자들은 병력규모에 대해선 철저히 보안을 지켜야만 했다.작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규 모공개는 곤란했다.그러나 한 관계자는 『수천명 규모냐』는 질문에 웃으며 『경찰등을 합쳐 0을 더 붙여야 할거요』라고 했다.해안은 구축함등에 의해 완전 봉쇄됐고 만일에 대비,공군 전투기들이 비상대기태세에 돌입했다.
8시쯤에는 강릉시강동면임곡리 양계장 부근에서 3~4발의 총성이 들렸다는 주민제보도 있었다.10시55분쯤에는 임곡리에서 길을 가던 주민이 총기를 든 무장간첩으로부터 어깨등을 폭행당했다는 신고도 들어왔다.
사태가 점점 험악해지자 군은 날이 밝기가 무섭게 육군과 공군헬기 10여대를 청학산 일대에 띄웠다.그러나 좀처럼 수색작업은진전되지 않았다.
11시30분.더이상 간첩들의 족적을 찾지 못하던 군.경은 임곡리 임곡초등학교 부근에서 간첩 1명이 인근 청학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는 주민들의 신고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헬기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김동진의장도 『가만히 벙커에 만 있을 수없다』며 오후1시쯤 현장으로 달려가 4시부터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오후5시.청학산 위를 날던 헬기 1대의 긴급 무전이 오영우사령관에게 전달됐다.『청학산 중턱에 간첩으로 보이는 11구의시체가 있습니다.』 수색대는 청학산 중턱으로 포위망을 좁혔다.
그곳엔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의 눈을 부릅뜬채 숨진 간첩 11명이 널려 있었다.10명의 시체가 한곳에 몰려있었고 다른 1명은약간 떨어진 곳에서 손에 권총을 든채 숨져 있었다.이 한명이 다른 10명을 권총으로 사살한뒤 자기도 머리를 쏘고 자살한 것으로 추정됐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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