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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하루 15시간 노래·춤 … 노래방짱들도 "악"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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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와 춤 연습엔 밤낮이 없다. 희미한 조명 아래 ‘원티드’ 막내 멤버 서재호(左)가 전문 안무가의 지도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권혁재 전문기자]

▶ 힘든 녹음 작업 중에서 가장 기다리던 야참시간이다. 오른쪽부터 하동균, 김재석, 서재호.

▶ 얼굴은 웃고 있지만 다리는 후들후들. 그나마 간단한 손동작이라 따라 할 수 있었다. 왼쪽부터 최민우 기자, 백댄서 ,이경희 기자. [권혁재 전문기자]

*** 첫째 날 4월 21일 최민우 기자

'3박4일간의 합숙이라…. 설마 군대 유격 같기야 하겠어. 이참에 아예 직업 가수로 나서 봐?'

아침에 속옷 등 옷가지를 챙겨 나오면서 긴장감과 설렘이 교차한다.

오후 4시. 후배 이경희 기자와 함께 도착한 곳은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한 스튜디오. 가수 훈련에 응해 준 엠보트 측 관계자는 "첫날이니 분위기나 익혀라"며 녹음실을 둘러보라고 한다.

녹음실엔 이미 먼저 온 '손님'들이 있다. 앞으로 며칠간 함께 연습할 원티드(Wanted) 멤버들이다.

이미 몇시간째 녹음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눈치다.

"'우~girl'만 한번 더할게요.죄송합니다." 덥수룩한 수염의 터프가이, 원티드 멤버 막내 서재호(23)였다. 원티드는 리더 김재석(26)과 꽃미남 하동균(24)과 서재호,이렇게 세명이 한팀이다.

우리가 부를 노래도 정해졌다. 원티드가 데뷔 앨범에 실을 'moonlight'로, 약간 템포감이 있는 노래였다. 서로 부를 부분을 정한 다음 목청껏 불러 보았다. 그러나 에코(메아리 효과)가 나는 노래방 마이크를 잡고 부를 때와는 영 달랐다. 음정이 불안한 데다 둘의 목소리가 따로 놀았다.

그러자 재석이 나선다. "노래엔 대선이 있어요." "대선이 뭐죠? 큰 선인가." "아뇨. 흐름이 있다는 말이에요." "…."

이날 녹음은 새벽 1시가 돼서야 끝났다. 부산에서 올라와 동생과 함께 사는 재석은 자기 집으로 갔고, 우린 동균과 재호의 숙소인 화곡동 다가구 주택으로 갔다. 맥주라도 간단히 할까 했더니 "녹음할 땐 절대 술을 안 마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원티드 멤버 세 명은 사실 이번 앨범이 두번째 도전이다. 이전에 따로 활동했지만 '뜨지'못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방황 끝에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팀을 꾸린 것. 미래가 불안하지 않은지 궁금했다.

"심란하죠. 처음 시작할 땐 난 무조건 성공한다고 확신했어요. 나보다 노래 못하는 애들이 저렇게 뜨는데 내가 안 될 거라곤 전혀 상상도 안 했죠. 근데 벌써 두 번이나 팀을 옮겼잖아요."

동균은 가수 임재범과 비슷한 호소력 있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제법 어필했을 것 같다. 그런데 계속 실패만 했다. "저 독한 마음 먹고 음색 바꾼 거예요. 원래 고운 목소리였는데 이 바닥에서 확실히 튀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거든요."

벌써 시계는 새벽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 둘째 날 4월 22일 이경희 기자

오후 1시. 본격적인 노래 연습이 시작됐다. 노래 선생님은 빅마마 멤버 신연아의 언니인 신선아(34)씨. 우선 몇 번 불러 보라고 한다.

"남자 노래를 부르니까 여자는 낮게, 남자는 높게 들려요. 그래도 두 분 다 프로와 아마의 중간쯤에는 있는 것 같네요."

전문가에게 준프로라고 평가받다니, 기분은 좋다. "가수 흉내를 내지 말고 자신의 느낌대로 부를 것. 꾸미지 말고 자연스럽게 부를 것" 등 몇가지를 지시받고 2시간 만에 깔끔하게 노래연습을 마쳤다.

이번엔 춤이다. 안무 전문가 황호(25)씨가 교습을 맡았다. 황선생도 몇년 전 발라드 가수로 데뷔한 적이 있단다. 앨범을 내자 고향 경북 봉화에는 플래카드도 걸렸다고.

몸풀기를 시작했다. 그럭저럭 할 만했다. 하지만 30대 중반에 들어선 선배 최기자는 앉은 자리에서 허리를 앞으로 숙이는 것부터 쩔쩔 맸다.

"정말 심각하시네요." 황선생이 등에 올라타 누른다. 얼굴이 벌겋게 물드는가 싶더니 급기야 비명이 터진다. 곧이어 간단한 웨이브를 배웠다. 한쪽 손끝에서 다른 쪽까지 파도를 치게 만드는 동작. 막상 해보니 각이 안 나온다.

두어 가지 동작을 더 배우고 우리가 부를 곡에 맞춰 안무를 익히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구호에 맞춰 동작을 따라하는 건 그래도 할 만했다. 막상 노래를 틀고 춤을 추려니 박자가 두어배 빨라진 느낌. 순서를 쫓아갈 수 없다.

춤 연습이 끝나고 녹음실로 향하자 오후 7시30분이다. 원티드는 타이틀곡인 '발작'을 녹음하고 있다.

"너 한 마디 가지고 얼마나 붙잡고 있는 거야."

녹음을 지휘하는 디렉터인 한원종(30.청운대 방송음악과 강사)씨가 녹음실 안의 재호를 다그친다. 타이틀곡인 만큼 모두 긴장한 모양이다. 재호에 이어 재석이가 부른 뒤 자정 무렵엔 동균이가 녹음실로 들어갔다. 7시간 동안 기다리느라 목이 안 풀린 모양이다. 그래도 한씨의 질책은 가차없다.

"네 노래 듣고 네가 소름이 돋니? 네가 안 돋으면 나도 안 돋아. 감정 살려."

이날 녹음은 이튿날 새벽 5시에야 끝났다.

*** 셋째 날 4월 23일 최민우 기자

아침, 아니 오전에 눈이 안 떠졌다. 새벽 5시30분쯤 들어와 잠들었으니 채 다섯시간도 못 잤기 때문이다. 목도 칼칼했고, 온몸이 뻐근했다. 무엇보다 어제 물리도록 한 '그 짓'을 똑같이 해야 한다니…. 낮 12시쯤 숙소를 나서는데 뒤에서 재호가 한마디한다.

"형, 힘들죠. 지금은 녹음 때문에 조금 여유있게 작업하지만 한달 전엔 저희도 매일 춤 세시간, 운동 두시간, 노래 세시간씩 꼬박꼬박 했거든요. 다 그렇게 고생하는 거예요."

근데 막상 노래 연습에 들어가니 생각보다 소리가 잘 나왔다. 훈련으로 목에 굳은살이 배기면 음색도 달라진다고. 신선생은 "어제보다 한결 나아졌다. 정말 음반 내도 되겠다."고 말한다. 아, 이제야 우리의 실력을 알아 보는구나.

"성공하려면 삼박자가 맞아야 해요. 실력.홍보.운. 인간성도 중요해요. 이 바닥이 뻔하거든요. 처음엔 반짝 할지 몰라도 '인간성 나쁘다'고 찍히면 오래 못가죠."

춤 연습 시간. 공포의 스트레칭이 다시 시작됐다. 나름대로 열심히 다리를 찢고 있는데 황선생은 아예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유연성은 포기한 모양이다. 아, 그래도 홍대 클럽에서 논다면 논다고 자부하던 나인데….

어제 한 안무에 새 동작을 추가해 전체 안무가 완성됐다. 그러나 정확하고 맵시 있게 동작을 취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저 대충 박자 맞춰가며 동작을 따라가기도 벅찼다.

"두분 다 제대로 할 때까지 안 끝낼 겁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됐다. 아, 이래서 체력 운동을 하는구나. 이를 악물고 버텼다. 가까스로 춤추기가 아닌 동작 따라하기 완성.

"유치원생 수준입니다. 2년 정도 연습하면 조금 늘겠네요." 황선생의 평가는 냉정했다. 댄스 가수는 꿈도 꾸지 말란 뜻으로 들렸다.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합정동 스튜디오로 갔다. 소파에 앉아 잠깐 졸았더니 매니저가 지나가며 툭 친다.

"최기자. 녹음 과정 지켜보는 것도 가수 훈련의 하나거든요. 힘들면 포기하시고요."

이날 녹음도 새벽 5시까지 이어졌다.

*** 넷째 날 4월 24일 이경희 기자

알람이 울린다. 몸은 이미 녹초가 돼 일어날 수가 없다. 선배 최기자도, 원티드 멤버들도 도저히 몸을 가누기 힘든 모양이다. 오후 1시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이 잡혀 있었는데 너무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엠보트 측에서 취소한다는 연락이 왔다. 휴~ 살았다.

오후 5시부터 원티드의 안무 연습에 동참했다. 권혁재 사진기자가 촬영을 하겠다며 방배동 연습실로 찾아왔다. 원티드는 댄스그룹은 아니지만 노래를 부를 때 하는 간단한 몸동작은 전문 안무가에게 배웠다. 백댄서들은 타이틀곡에 맞춰 현란한 동작을 보여준다. 이틀 배운 가락이 있다고 최기자와 나도 이들 틈에 끼어 따라 해봤다. 그런데 스피드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20분쯤 지나자 "우선 좀 지켜보세요"라며 말린다. 연습에 방해된다는 눈치였다.

이번엔 녹음실. 원티드 멤버가 화음을 맞춰 라이브 연습을 한다. 우리에게도 기회가 돌아왔다. 처음으로 들어가 본 녹음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노래를 부르는 도중 어디선가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분명 방음이 될 텐데 환청인가. 녹음실 밖에서 사진기자가 셔터를 마구 누른다. 노래를 한번 다 부르고 나자 엔지니어가 "들어 보세요"라며 녹음된 노래를 튼다. '헉! 내 목소리가 이렇게 이상했나.' 민망한 나머지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웃음이 터진다.

허겁지겁 녹음실을 나오자 사진기자가 속삭이듯 얘기한다. "가수들이랑 비교하니까 도저히 창피해서 못 들어주겠다."

편집국 노래자랑에서 1등을 한 발군의 실력이 이렇게 쪼그라들 줄이야. 차라리 노래방짱으로 만족하며 사는 게 좋았을 텐데….

"최선배, 월요일 녹음은 하지 말죠. 꿈을 접는 게 낫겠는데요."

그러나 최기자는 발끈한다.

"우리가 너무 기죽어서 그래. 잘할 수 있어."

*** 마지막 날 4월 26일 최민우 기자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드디어 녹음날. 어제 일요일 하루를 쉰 덕분에 체력은 어느 정도 회복했다. 그런데 목 상태가 영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해서 연습을 들어 본 신선생이 매섭게 몰아친다. "제가 누누이 얘기했죠. 하루 두시간씩은 꼭 연습해야 한다고. 본인들은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제가 듣기엔 확실히 달라요. 노래 배우기 전 상태 보다 더 나빠요. 정말 프로 가수면 이런 상태로는 녹음 안 하고 그냥 돌려보냅니다. 두 분 진짜 가수에 도전하기로 했던 것 아니에요. 그냥 장난삼아 하시는 건가요."

눈물이 쏙 나올 정도다. 그러나 어찌하랴. 스튜디오를 예약했으니 예정대로 녹음을 할 수밖에. 조금이라도 목을 풀어 보려고 소리를 내질렀지만 신선생이 말린다.

"그렇게 하다간 정작 녹음할 때 목이 쉬어요."

듀엣곡이지만 두 사람이 따로 녹음한 뒤 합치기로 했다. 내가 먼저 헤드폰을 썼다. "눈을 떠도 꿈 같은 라스트 나이트(last night)~."

첫 소절부터 삐걱거린다. 헤드폰으로 들리는 신선생의 말. "그냥 부르지 마시고 감정을 넣으셔야죠. 여자를 유혹하듯 은근하게. 그래서야 누가 음반 사겠어요."

음정도 자꾸 틀린다. 노래방에서 부를 땐 대충 음정이 부정확해도 분위기로 먹고 들어갔는데 실제 녹음을 하자 숨소리까지 정밀하게 잡힌다. 또 부르고 또 부르고. 고음으로 불러야 하는 대목이 오자 이번엔 엔지니어가 녹음을 멈춘다.

"음이 찢어져요."

신선생이 "한 마디씩 끊어 가자"고 제안한다. 그래도 틀린다. 가까스로 2시간 만에 끝.

이번엔 후배 이기자가 녹음실로 들어갔다. 음감이 정확한 편인 이기자는 곧잘 부르는 것 같다. 눈이 빠져나올 듯 피곤해 난 소파에 눕고 말았다.

한시간쯤 지나 다시 녹음실로 들어갔다. 코러스를 넣기 위해서다. 괜히 목소리 깔면서 노래 부르는데 신선생이 좀 듣더니 "곡 분위기와 안 어울리니까 코러스는 빼자"고 한다. 총 4시간 만에 녹음이 끝났다. 노래방에서 1년 부를 노래 오늘 하루에 다 부른 듯싶다.

엔지니어의 마지막 조정작업을 거쳐 결국 우리 음반이 만들어졌다. 돌아오던 차 안에서 들어 보니 거북하기만 하다.

"가능성 없는 사람은 없죠. 저라면 1년 정도 하루 종일 노래만 시키고 나서 다시 가능성을 검토하겠어요"라는 신선생의 마지막 코멘트가 떠올랐다. 가능성 없다는 말 보다 무섭다. 이런 기계적인 연습을 1년간 되풀이하라니. 우리 노랫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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