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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뷰>KBS1 '수퍼마켓에서 길을 잃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브라운관 속에서 길을 잃었다.」 8일 밤9시45분에 방영된KBS1『신TV문학관』「슈퍼마켓에서 길을 잃다」(연출 전산.극본 김혜정)를 본 소감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다.
감각적 영상,과감히 생략된 대사,실험적 카메라 기법,주부도벽,극단적 콤플렉스….「슈퍼마켓…」를 보다보면 브라운관 안에서 길을 잃을 것만 같다.
「슈퍼마켓…」는 KBS가 본격 「TV영화」를 표방하며 지난 5월 방영한 「길위의 날들」(연출 김홍종.극본 김옥영)에 이은제2탄.왕년 『TV문학관』시절의 작품성에다 영상미와 연출력을 결합시킨 「길위…」은 시청자로부터 상당한 격려와 호평을 받은바있다. 자연 후속작에 걸린 시청자의 기대는 클 수밖에 없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고만고만한 드라마에 식상한 시청자로서는 당연하게 갖게 되는 기대이자 권리기 때문이다.
「슈퍼마켓…」는 괜찮은 소재발굴.항공촬영등 실험적인 카메라기법이 주는 위안을 제하고 나면 감동과 재미 양면에서 아쉬움을 많이 남겼다.
「슈퍼마켓…」는 소외와 무관심.물신주의.사치.허세등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앓고 있는 증상을 그린 이남희의 동명소설을 소재로 삼은 것은 좋았다.그러나 1시간30분동안 브라운관에 쏟아져 나온 화면들은 참신함을 넘 어 혼란스럽기까지 하다.일상에서 귀와 눈에 익은 20여편의 CF화면과 CM이 여과없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연출가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광고와 정보의 홍수속에 세뇌당하는 일상의 삶을 그려내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말한다.그러나 한마디로 기교에 치우친 나머지 난삽하다는 인상을 지울수 없었다. 극적 구조도 너무 비약과 생략이 많아 보는 사람이 힘들여 연결고리를 찾아내야 하는 수고가 필요했다.널부러져 있는 일상을 굳이 꽉 짜인 서사구조속에 담아낼 의무는 없다.하지만 제작진의 실토대로 감각적인 영상 메시지의 전달에 지나치게 치중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상식적인 선을 넘은 몇몇 장면은 눈에 거슬리기도 했다.음악회약속을 잊은 남편에 실망한 30대 주부 선영(최명길 분)은 생전 처음본 외간남자와 호텔방으로 직행한다.아지트에 불이 났는데도 사람을 구하기보다 키를 크게 하는 운동기구를 불길에서 꺼내려는 현수(이혜은 분)의 「숏다리 콤플렉스」는 지나친 과장으로비춰졌다.
감각적인 영상도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못해 스토리 전개와 겉돈감이 있다.꼭 화려한 연출만으로 주제가 사는 것은 아니다.
「슈퍼마켓…」가 전하고자 했던 주제는 오히려 차분하고 잔잔한화면으로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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