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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계 형사가 가출인 추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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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 수서경찰서는 지난 한 달 동안 잠실 롯데백화점 한 곳에서 50여명의 절도범을 붙잡았다. 대부분 습관성 도벽이 있는 중산층 주부들로 의류 한두 점을 슬쩍하다 현장에서 적발된 경우였다. 이전까지 수서서의 백화점 절도범 검거율은 한 달 평균 한두 명에 그쳤었다.

지난 2월 17일부터 실시된 경찰의 '민생 침해 범죄 소탕 100일 계획' 이후 강력범죄가 줄고, 검거 실적은 크게 늘어났다. '100일 계획'은 1월 말 부천초등생 살해사건 등 잇따른 사건으로 국민 사이에 불안감이 커짐에 따라 나온 대책이다.

50일째인 지난달 9일 기준으로 경찰은 실종 관련 범죄자 1377명을 검거했다. 또 폭력배 942명, 강도범 1473명, 절도범 1만1192명을 붙잡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5~80% 이상 향상된 실적들이다.

경찰은 현재 100점 만점 기준으로 실종.가출(25점), 조폭(20점), 강도(20점), 절도(10점), 갈취(10점), 마약(5점)으로 나눠 일선 경찰서별로 매일 순위를 매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선 경찰서에선 '점수가 되는' 사건에 매달리고, 강도를 잡아야 할 강력계 형사가 가출인 찾기에 나서는 등 부작용도 일어나고 있다. 상부의 수사 채근에 시달리는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선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경찰청의 경우 매일 순위가 기록된 표를 각 경찰서에 보내고 하위 5개 경찰서의 형사과장을 매주 한번씩 불러 수사를 독려하고 있다.

종로경찰서에선 100일 계획이 실시된 뒤 강도 발생이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절도 역시 일주일에 3~4건에 불과한 실정이다. 타결책은 '철새 수사'. 수배자 명단을 뽑아 철새처럼 전국을 떠돌며 검거작전을 펴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17일에는 전남 고흥경찰서에서 강도상해 등으로 수배한 정모(25)씨를 서울 공릉동에서 검거했다.

성북경찰서는 지난달 19일 수도권 일대 대학을 돌며 4년간 3억원어치의 금품을 훔친 장모(27)씨를 구속했다. 구속 직후 형사과의 전 형사 50여명이 매달려 400명에 이르는 피해자 확보에 주력했다. 피해자 수를 늘려 가산점을 받기 위해서였다.

수사가 까다로운 살인.조직폭력.강도 등 강력 사건보다 평가점수가 상대적으로 후한 가출청소년 찾기에 강력반을 대거 동원하는 경찰서도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절도 사건이 빈번한 대형 백화점이 경찰관의 주요 '출입처'로 떠올랐다. 백화점에서 자체적으로 적발한 절도범은 보안실장이나 안전실장을 통해 경찰에 신고된다. 이 때문에 시내 한 백화점의 안전실장 방 앞에 서울 시내 6개 경찰서 형사들이 하루종일 대기하는 진풍경마저 벌어졌다.

경찰 관계자는 "100일 계획으로 경쟁이 붙어 검거 건수가 늘어나긴 했지만 순위와 실적 때문에 점수가 되는 사건에 치중하는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고란.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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