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칼럼>일관성 있는 '북한 껴안기' 전략 아쉬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한번 혼쭐이 난뒤 쉽게 그 체험을 잊지 못하고 비슷한 상황에 처할 때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는 인간심리의 약점을 적시한 것이다.남북한 관계의 고착상태,아직도 서로 촉각을 곤 두세우며 비방이나 힐난의 공간을 찾으려고 애쓰는 양자의 모습에서 문득 이속담이 연상된다.8천마일 떨어진 미국 워싱턴 근교에 사는 해외동포의 한사람으로서 바라만보고 있어도 애간장이 타고,일하고 싶은 의욕조차 사그라지는 심정이다.대한 민국도,북조선인민공화국도한민족이 지닌 아름다움과 장점대신 추한 단점만 노출시키는 외교전략 분야의 3류국가들이기 때문이다.두개로 쪼개진 한반도의 두국가는 낮과 밤처럼 상반되는 국가 발전과정을 전세계에 드러냈다.대한민국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던 새우시절에서, 고래등보다 크기는 작지만 유연하게 작은 몸을 움직이며위기를 피할수 있는 두뇌를 갖고있는 돌고래로 성장했다.
그러나 북한은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하듯 정치.경제.사상등 모든 국제환경이 바뀌는데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나쁜 제도,나쁜 정치만을 추종하는 바람에 파산국가의 지위로 몰락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과 많은 시민들이 북쪽 사람들의 식량궁핍을 걱정해주는 오늘을 지켜보면서 지금이야말로 한국은 「북한 껴안기」전략을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이다.필자를 포함,한반도밖에 거주하는 해외전문가들은「이념과 정치제도의 승리 는 서울이 차지했고,서울은 죽어가는 평양을 선도할 시기」라고 판단하고 있다.그런데 당당히 자신감을 가지고 일관성있게 대외전략을 펴나가야 할 한국이 아직도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식의 자세로 북한을 대하고 있어 안타깝다.
10년전으로 돌아가보자.첨예한 이념대립과 냉전의 분위기 속에서 상호비방.공작.신경전이 극에 달했던 그 시기,한국의 어느 누가 무역이나 투자를 하겠다고 평양이나 나진을 방문할 수 있었던가.그런 광경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그 어느 예언가가 평양과 워싱턴의 관리들이 LA나 뉴욕에서 햄샌드위치를 먹어가며 경제개방을 놓고 토론을 벌일 수 있으리라고 예견했던가.나 자신도 말로만 듣던 북한의 고위관리들을 미국에서 만나 커피를 마시며 북쪽의 홍수피해나 부모님 고향인 평원의 변화모습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10년전과 오늘은 남과 북의 상반된 발전처럼 극적인 변환을 노정하고있는 것이다.
옛속담과 이같은 극적 변환을 구슬꿰듯 논리적으로 엮어보면 어린이라도 알 수 있는 하나의 진리가 대두된다.그것은 한반도 주위환경과 한반도 내의 두 국가 발전이 변화했듯이,이제는 자라 보고 놀란 사람이 솥뚜껑 보고 도망가지 말고 그 뚜껑을 열어 속의 현실을 파악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솥뚜껑을 들 수 있는 사람은 서울의 정치지도자고,현실을 보여줘야 하는 사람은 평양의지도자다.
뚜껑을 든 사람은 더이상 관대니,자비니,자선이니 하는 타령을멈추고 그 텅빈 솥에 물과 쌀을 부어주어야 한다.바라건대 텅빈솥은 다소곳이 부어지는 새양식을 흡수해야겠지만,그 솥이 안받겠다고 하더라도 어디 갈 곳이 있겠는가.이 솥은 발이 달린 동체(動體)가 아니기 때문이다.미국과 세계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이미 『서울이나 평양이나 똑같다』는 비평을 하기 시작했다.적어도서울은 솥뚜껑을 열 줄 아는 새로운 심리전환을 해야한다.
오공단 재미학자.OH&HASSIG 연구소 대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