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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생사학(生死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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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 여배우의 자살이 세상을 경악에 빠뜨렸다. 그간 여러 연예인이 스스로 세상을 버렸지만, 이번은 정도가 다르다. 20여 년간 친 살붙이처럼 친근한 대중스타였다. 1990년대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한 한국 연예산업의 상징적 존재이기도 했다. 최진실은 오직 CF만으로 뜬 ‘CF 스타’ 1호다.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라는 호칭도 처음 들었다. 대중스타의 상품성을 웅변한 첫 케이스였다. 체계적인 매니지먼트 시대를 열기도 했다.

무엇보다 탈신비 스타였다. 지금이야 너나없이 소탈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연예인은 우월적 존재였다. 반면 최진실은 가난한 어린 시절을 공개했고, 옆집 동생 같은 친근함으로 사랑받았다. 그녀의 일상적이고 발랄한 매력은, 거대 담론이 사라진 90년대 신세대 문화 트렌드와 잘 맞물렸다. 젊은 세대의 연애 풍속도를 경쾌하게 그려내는 트렌디 드라마가 그녀를 주인공으로 해 한껏 발화했다. 꿋꿋한 캔디 이미지로 사랑받던 그녀가 슬럼프 이후 억척 아줌마나 ‘줌마렐라’ 이미지로 재기한 것도 그다운 일이다.

그런 그였기에 자살이 주는 충격은 훨씬 크다. 자살 도미노를 우려하는 시선도 많다. 『한국에서 베르테르 효과에 대한 연구』(유정화)에 따르면 1994~2005년 국내 유명인의 경우 월 평균 137명이 더 자살했다.

실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 사회적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자살을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라 보고 ‘자살권’을 주장하는 장 아메리 같은 이들도 있지만, 자살률이 높은 사회가 행복한 사회가 아님은 자명하다.

『자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죽음』을 쓴 오진탁 교수는 아예 ‘생사학(Thanatology)’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자살 예방을 뛰어넘어 삶과 죽음을 새롭게 보는 성찰적 생사관을 강조한다. 흔히 자살자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죽음에 대한 무지와 오해라고 지적한다. 그는 “죽음을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육신과 영혼의 분리로 본다면, 또 자신의 존재를 삶과 죽음을 거치는 영혼의 여행으로 보게 된다면, 삶이란 포기할 수 없는 영혼의 성숙 과정”이라며 “자살로 내모는 물신주의 또한 죽음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부터 시작됐다”고 썼다. ‘자살 충동’이 전염병처럼 퍼지는 시대, ‘영성’이라는 해법을 던진 셈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