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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백남준, 오래 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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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8일 개관하는 백남준 아트센터 전경.

“백남준 아트센터라면 좀 별난(crazy) 미술관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 6월 내한한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57)는 스승 백남준(1932∼2006)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별난 거장 백남준을 기리는 페스티벌은 역시 별나다. 경기도 용인 백남준 아트센터는 단순한 기념관에 머물기를 거부했다. 19개국 103명, 아홉 팀을 불러모아 미술·건축·공연 한마당을 벌인다. 8일 아트센터 개관과 함께 시작하는 백남준 페스티벌을 미리 소개한다.

 #“지금 여기서 하라”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 생전에 백남준은 본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경기도에 들어선다는 소식에 이런 이름을 붙여줬다. 백남준 페스티벌은 8일부터 내년 2월 5일까지 넉 달 동안 아트센터와 그 일대(신갈고등학교 체육관, 지앤아트갤러리)에서 열린다. 제목은 ‘나우 점프(Now Jump)!’, 이솝 우화의 한 구절인 “여기가 로도스섬이다. 지금 뛰어라”에서 따왔다. 한 예술가의 관념적 기념관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예술적 실천을 수행하겠다는 뜻이라는 게 아트센터 측의 설명이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67점과 비디오 기록물 2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자료관이자, 미디어 아트 미술관, 큐레이터 랩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아트센터의 설립 목적에 맞는 행사를 기획하고자 고심한 결과다.

페스티벌은 자료전·작품전·퍼포먼스·담론·예술상 수상의 다섯 마당으로 이뤄졌다. 자료전에서는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행위예술가’ ‘전위음악가’이자 ‘플럭서스(Fluxus) 창립멤버’로서 백남준의 면모를 볼 수 있다. 1960년대 서구 미술계를 강타한 국제적 전위예술운동인 플럭서스의 창시자 조지 마치우나스와 이념적 스승인 존 케이지, 해프닝의 선구자 앨런 카프로, ‘사회적 조각’ 개념을 세운 요제프 보이스, 첼리스트 샬롯 무어맨 등 플럭서스 예술가들과의 활약상을 되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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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전에는 국내외 건축가와 미술가가 공동출연한다. 생태도시 건축가 파올로 솔레리의 프로젝트 스케치와 조형물, 건축가 조민석의 프로젝트, 잭슨 홍, 사사의 작품 등이 어우러진다.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전무후무한 전위적 퍼포먼스를 펼쳤던 백남준의 행위예술 이후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퍼포먼스를 조망하는 마당도 마련됐다. 올해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의 주빈작가인 이탈리아 로메오 카스텔루치와 아트센터가 공동제작한 ‘천국’을 비롯한 20여 개의 공연이 12월 말까지 이어진다.

#‘굿모닝, 미스터 백’

1950년 한국을 떠나 일본서 대학 교육을 받고 서구에서 활동한 백남준은 몸보다 명성이 먼저 돌아온 예술가다. 귀향은 1984년 정초, 전 세계 주요국에 위성 TV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방영하고 나서다. 가공할 능력을 지닌 매스미디어가 인간을 정복한다는 가상 소설 ‘1984’를 쓴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에게 백남준은 TV를 통해 “좋은 아침이오, 오웰씨(Good morning, Mr. Orwell)”라고 말했다. 매스미디어가 인간을 정복한다기보다는 인간 사이를 연결해주는 정보와 소통의 수단임을, 여전히 우리는 건재함을 그렇게 유쾌하게 알렸다.

아트센터의 5605㎡(약 1695평) 건물은 그랜드 피아노의 유려한 곡선을 닮았다. 밤에 불이 들어오면 TV 모니터를 연상시킨다는 이들도 있다. 예산문제로 긴 시공과정을 거치며 가까스로 완공돼 애초 설계의 본뜻을 못 살렸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올해 한국 건축문화대상 사회공공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아트센터 개관은 7년만의 결실이다. 2001년 백씨와 경기도 간 양해각서를 토대로 건립 기본 계획을 만든 뒤, 백씨 사후 3년 만에야 문을 열게 됐다. 그가 세계적 거장이 되기까지, 해준 것 없던 고국은 이제 좀 면목이 선다. 그래서 인사를 건넨다. “굿모닝, 미스터 백.”

관람료 성인 7000원, 초등생 3000원. 031-201-8500.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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