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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해외펀드 환율만 바라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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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거침없이 내달리던 환율이 모처럼 꺾였다. 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20원 떨어진 달러당 1187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하지만 원화 가치가 빠르게 살아날 것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선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 쌓이고 있다. 미국 금융위기에 돈이 급해진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에 넣었던 달러를 빼가는 것도 부담이다. 요즘 주식·펀드수익률은 환율 손에 달려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자동차 웃고, 음식료 울고=그간 환율이 너무 뛰어 부정적 측면만 강조됐지만 수출주에는 원화 약세가 기본적으로 호재다. 자동차가 정보기술(IT)보다 좀 더 유리하다. 선진국 판매 비중이 큰 IT에 비해 중국·인도·러시아 등 물건 팔 곳이 다양해서다. IT 기업은 일본 등에서 핵심 부품과 기술을 수입할 때 달러를 줘야 하지만 자동차 회사는 부품 대부분을 국내에서 조달하는 것도 이점이다. 완성차 업체 중에선 기아차가 가장 주목받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서성문 연구위원은 “현대차는 수출 비중이 58% 정도지만 기아차는 70%”라고 말했다. 수출 비중이 큰 조선·기계업체도 혜택을 볼 수 있다. 열교환기를 만드는 S&TC는 수출 비중이 90%가 넘는다. 솔로몬투자증권은 이 회사의 올해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90% 늘어날 걸로 전망했다.


이와 달리 철강·음식료 업체처럼 원자재는 수입하고, 매출은 내수에 기대는 업종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현대증권 김현태 선임연구원은 “포스코의 경우 워낙 덩치가 커 그나마 타격이 작겠지만 외화 차입금이 많은 동국제강은 제법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음식료 업종에선 CJ제일제당처럼 원자재를 수입·가공해 다른 식품회사에 파는 곳이 최대 피해자다. UBS는 “하반기 원-달러 환율을 1200원으로 가정하면 CJ제일제당이 추가 부담할 비용은 올 하반기 추정 영업이익의 26%인 770억원”이라고 전망했다. 은행은 그동안 중소기업에 팔았던 키코·피봇 등 통화옵션 상품이 복병이다. 해당 기업이 넘어지면 상대편 계약자에게 돈을 대신 물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 중소기업에 이미 대출해 준 돈을 떼일 위험도 있다.

◆땅 치는 환 헤지 펀드=해외펀드의 환율 영향은 더 크다. 가입 당시 기준으로 환율을 고정하는 환 헤지를 했는지 여부에 따라 수익률이 극과 극이다. ‘푸르덴셜중국본토주식’의 경우 환 헤지를 한 상품은 최근 한 달간 원금을 5% 가까이 까먹었다. 안 한 상품은 2.4% 수익이 났다. ‘삼성당신을위한N재팬주식’도 같은 기간 환 헤지형은 13.1% 손해를 봤지만, 안 한 경우엔 손실률이 0.3%에 불과했다. 심지어 투자 대상국보다 환 헤지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세계 증시가 동반 추락한 가운데 환율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중국·인도·브라질 주식형 등 대부분의 유형에서 환 헤지를 안 한 펀드가 수익률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제로인 이수진 연구원은 “당분간 원화 악세가 이어져 환 헤지를 안 한 펀드가 계속 선전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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