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3000만원이 넘는 모든 관급 공사를 공개 입찰에 부쳤다. 그 전엔 대부분 수의계약으로 처리하던 것을 경쟁에 부친 것이다. 구청 직원들 다수가 반발했지만 그는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관급 공사를 둘러싼 부패를 없애려면 수의계약의 문제점부터 시정해야 한다고 믿었다"고 李당선자는 회고한다.
그는 85년 고려대를 졸업한 뒤 경기도 안산의 대한모방 여공으로 위장취업했다. 그러다 "더 큰 현장에서 일하고 싶어 울산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그는 울산의 '민주화 교사협의회'와 '여성실업 대책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다. 남편도 같은 운동을 했다. 두 사람의 지역활동은 울산에선 잘 알려져 있다.
남편 金씨가 98년 울산 동구 초대 민선 구청장에 당선된 것도, 李당선자가 그 뒤를 이은 것도 이 때문이다. 李당선자가 구청장이 되자 울산 사람들은 그들을 '운동권 부부 구청장'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지난 4.15 총선 때 나란히 출마했다. 金씨는 울산 동구에서 민노당 후보로 나왔다. 정몽준 의원에게 도전한 것이었지만 낙선했다. 그래서 '부부 국회의원'의 탄생은 이뤄지지 않았다.
李당선자는 "17대 국회에서 남편의 몫까지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여성으로선 특이하게 국방위에서 일하길 원한다고 했다. "복지분야에 충분한 예산이 안가는 것은 정부가 분단 상황을 핑계로 무기 구입에 너무 많은 돈을 쓰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국방 예산을 대폭 삭감해 그 돈이 복지부문에 쓰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또 '비정규직 차별철폐법'을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고 했다. 김종철 민노당 대변인은 그를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사람"이라며 "구청장 때처럼 마음 먹은 것은 꼭 관철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