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리뷰>연극 "비언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올 여름 대학로에서는 화장실을 무대로 한 작품이 무려 네편이나 상연됐다.연극이 예술행위를 통해 사회현상을 어떻게든 반영한다고 할때 화장실의 무대화는 어떻게 해석돼야 할까.왜 변기가 무대에까지 올라가게 됐을까.
네작품중 가장 많은 관객이 몰리는 『비언소』(이상우 작.박광정 연출)는 5인의 배우가 공중화장실에서 벌어지는 28개의 사건을 연기한다.우리가 현실에서 접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일일이 폭로되는 것이다.60개의 역할을 빠른 속도로 바꿔가면서 때로는 코믹하게,때로는 심각하게 연출했다.변기에 앉아 「힘주어」열변을 토하고 연극계.사회.정치.인간성등의 많은 문제들이 「연극이라는 거울」을 통해 비춰진다.이런 부당한 일들이 우리를 숨막히게 하는 진짜 공해임에도 불구하 고 극중에서는 허탈한 웃음과 폭소 속에 묻혀 버리고 만듯하다.하지만 재기 발랄하고 리드미컬한 연기,다양한 장면들과 콜라주 구성은 관객을 잠시도 놓아주지 않는 재미를 제공한다.
줄거리 없이 짧은 신들을 연결해 속도감과 변화를 주고 세상의여러 곳을 화장실로 옮겨와 사건의 추잡함을 부각시킨다.장터의 장사꾼과 똑같은 어조로 대중을 유혹하는 정치판의 정책광고를 화장실에서 외치고 전직 대통령들,주사파 발언,남북 회담의 경직된모습등이 희화화돼 실소를 자아낸다.
용무가 급한 3인의 행태를 통해 질서의식을 부각시키고 소변보러온 가난한 청년의 하소연,억세게 재수없는 남자의 투덜거림등 무거운 주제에 웃음이란 날개를 달아주었다.인질극.사기.타락한 언어습관등 온갖 사회적인 문제들이 도마에 오르지만 심각한 것을코믹하게 고발함으로써 연극은 단지 빈정거림처럼 보인다.똥통같은세태의 반영이 지나친 코믹효과로 인해 그 문제성이 희석된 아쉬움이 있으나 진부하게 느끼기 쉬운 내용을 공중화장실이라는 특이하면서도 일상적인 공간으로 옮겨■ 박진감있고 재미있게 구성했다는 것이 이 공연의 자랑거리다.
최준호 연극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