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러, 말잔치보다 구체적 결실 맺도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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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명박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어제 모스크바에서 양국 관계를 ‘포괄적 동반자 관계’에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키로 합의했다. 경제 분야에 치중했던 양국 간 협력관계가 2010년 수교 20주년을 앞두고 정치·군사·외교·안보 등 민감한 분야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과 ‘전략적 동맹관계’, 일본과 ‘성숙한 동반자 관계’에 이어 중국·러시아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게 됨으로써 4강외교의 틀을 일단 갖추게 됐다.

시급한 에너지·자원 확보와 러시아가 갖는 전략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부의 4강외교에서 러시아는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형편이었다. 이 대통령의 이번 러시아 방문도 우여곡절 끝에 성사됐다. 넘치는 오일달러를 배경으로 러시아는 국제사회에서 급속히 영향력을 회복하고 있다. 늦었지만 러시아와의 관계를 격상키로 한 것은 잘한 결정이다. 특히 북한의 장래가 불안한 상황에서 한반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러시아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로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은 26건의 각종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한국가스공사가 러시아 가스프롬을 통해 우리나라 연간 가스 수요의 20%에 해당하는 750만t의 천연가스를 2015년 이후 매년 도입키로 하고, 북한을 통과하는 가스관 설치를 위한 공동 연구를 추진키로 한 것이 눈에 띈다. 성사될 경우 한국과 러시아는 안정적 에너지 공급원과 판로를 각각 확보하고, 북한은 통과료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1석3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말만 요란하고, 실질적 성과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과거에도 정상회담 때마다 무성한 합의가 있었지만 결국 흐지부지되고 만 것이 많다. 서캄차카 해상유전 개발,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 사업이 대표적 예다. 러시아가 태도를 바꾼 탓도 있지만 우리 측의 소극적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다. 한·러 관계 격상이 구체적 결실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