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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극복 캠페인 핑크리본] 엄마,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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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옥(맨 오른쪽)씨가 광진구 ‘아오마요가센터’에서 환우회 회원들과 함께 유방암 예방 캠페인의 상징인 핑크리본을 들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제공]

서울에 사는 안병옥(60)씨는 유방암 환우들의 모임인 비너스회에서 요가 팀장을 맡고 있다. 환우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 요가 수업에 참여하며 가족도 이해하기 힘든 환우들의 아픔을 다독이는 게 안씨의 일이다. 안씨 자신도 유방암으로 고통을 받았다.

안씨가 유방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0년 전인 1998년. 몇 년에 한번 젖몸살이 와서 고생했는데 진단을 받아보니 암이었다. 당시 대학생, 고등학생이었던 아들과 딸도 잘 자라고 있고 성당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딱 지금 정도면 행복하지’라고 느끼던 시절이었다. 집안에서 없어서는 안 될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했다. 병에 걸린 사실을 알았을 때도 “내가 없으면 아이들 도시락과 집안 살림은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해 6월 안씨는 한쪽 가슴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당시 수술을 맡은 서울대병원 유방센터 노동영 박사에게 병세를 묻자 “치료는 우리가 할 텐데 뭘 걱정하시냐”며 안씨를 안심시켰다. 당시 상태가 매우 심각했다는 사실은 그 후 몇 년 뒤에 들었다. 수술 후 항암치료와 27번의 방사선 치료가 일 년간 이어졌다. 힘든 치료를 견디며 머리가 두 번이나 빠졌다. 몸이 약해지자 자연스럽게 우울증도 찾아왔다. 수술 후 몇 년 동안은 수술한 자리를 쳐다보기도 싫었다.

병원에서 수술과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딸은 “엄마,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오늘 이렇게 힘든 게 나중에 행복하게 되기 위한 걸거예요”라는 편지를 남겼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3년만 더, 5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 후 10년. 힘든 시간을 겪었지만 환갑의 안씨는 지금 또래의 그 누구보다 활기차고 건강하다.

안씨의 달력은 빡빡한 스케줄로 빈틈이 없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모임만 서너 개다. 두 개의 노래교실에 참여하며 총무를 맡고 광진구의 ‘아오마요가센터’에서 김순종 원장과 함께 환우들을 위한 무료 요가 교실을 이끌고 있다. 성당 봉사활동으로 병원을 찾아 환자들을 위로하는 일도 하고 있다.

안씨는 “병에 걸린 후 내성적이던 성격도 정반대로 바꿨다”며 “병을 이기기 위해 누구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안씨는 ‘스트레스 안 받고 항상 기쁘게 살자’는 원칙을 정했다. 여러 모임에 참석했지만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을 일이 생기면 먼저 자리를 피했다. 웃을 일이 없다면 실없는 농담이라도 해서 주변 사람을 웃기곤 했다. 마음이 밝아지자 약해졌던 몸도 다시 생기를 찾았다.

수술 후 찾아온 후유증에도 적극적으로 맞섰다. 2003년 우연히 요가가 암환자의 재활에 좋다는 말을 듣고는 무작정 대학로에 있던 요가원을 찾아갔다. 병을 이기고 싶다고 설명하고 일주일에 2~3회씩 쉬지 않고 운동을 했다. 처음 1년간은 아프기만 했지만 꾸준히 수련을 하면서 점점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림프절 절제의 후유증으로 들어올릴 수도 없던 팔을 지금은 자유롭게 움직일 만큼 건강이 회복됐다.

간간이 찾아오는 우울증은 봉사활동을 통해 극복했다. 서울대병원에서 호스피스 교육을 받고 병실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환자를 위로하는 역할도 맡았다. 10년간 함께한 가족의 도움도 컸다. 남편과 아들·딸은 위로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시골에 있는 사촌 올케는 직접 키운 야채와 김치를 한 해도 빠짐없이 보내주고 있다. 암을 이기면서 10년을 보냈지만 조심스러운 마음은 여전하다. 안씨는 “지인들에게도 미리 암 검진을 받아보라고 한다”며 “암이라 해도 용기를 잃지 않는 긍정적인 마음이 있다면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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