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해외에서의 신변안전을 위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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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며칠전 옌볜(延邊)에서 일어난 기아(起亞)그룹 박병현이사의 피살사건은 지난해 7월 안승운목사의 납북(拉北)이래 새삼 우리국민의 옌볜지역 여행때 안전문제를 우려하게 하고 있다.또한 최근 스리랑카 타밀반군(反軍)이 자국 대통령의 방한 을 전후해 현지 진출 우리 기업의 사업현장을 폭탄테러한 것은 지금까지 전례가 없던 정치적 테러로서 충격과 함께 여러가지를 생각케 한다. 현재 한국기업은 아시아 16개 개발도상국을 비롯,아프리카 오지(奧地)에 이르기까지 세계 도처에 진출해 있다.또한 해외로나가는 여행자수만도 95년 4백50만명으로 전년대비 1백19%증가했다.국외 여행자 수의 폭발적인 증가와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러시에 비춰 이제 우리 국민의 해외에서의 안전문제에 대한 총체적인 고려가 필요할 때라고 본다.
우리기업은 주로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덜 돼 있고,사회적으로도여러 불안요소가 상존(尙存)하고 있는 후진국에 많이 진출해 있다.후진국에 진출하는 기업들일수록 여러면에서 새로운 사고와 행동이 요구되고 있다.
첫째로 후진국 진출시 기업이윤 추구와 동시에 주재국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그러기 위해선 평소 주재국내 각종 문화행사.자선사업 등에 적은 성금이지만자주 참가하는 지혜를 발휘,한국기업은 경제동물( economic animal)이 아니며,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줘야 한다.
둘째로 피부.문화.의식의 차이를 극복하고,수용하며,어울리는 인간애와 포용력을 길러야 한다.
셋째로 외교관이나 상사주재원 할 것 없이 현지에 파견되기 수개월전부터 파견지의 정세는 물론 「문화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파견될 국가의 역사.문화.전통.의식구조.관습.생활행태 등을 잘익혀야 한다.현지에 도착해서는 무엇보다 현지국 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것을 덕목(德目)의 제일로 설정해야 한다.이젠 외교관이건 상사주재원이건 주재국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외교보다는 국내본사를 향한 내교(內交)에 열중하는 사고와 행동양상에서 과감히 탈피하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겠다.
파견될 나라의 역사.문화.관습 등에 대한 폭넓은 사전 공부는외교관과 기업인들의 성패를 좌우한다.70년대의 일화 한토막.우리는 인도와 겨우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초대대사로 모씨가 부임했다.그는 간디 여총리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는 석상에서 감회어린 표정으로 이미 신라때 구법승들이 인도까지 와서 불교를 터득,한국에 전파했을 정도로 양국간의 교류는 실로 유구했음을 강조하고,이를 기념하기 위해 인도에 기념탑을 세우는 문제를 제의했다.그러나 대사는 총리의 무표정에 적이 당황하고 실망했다.총리는 인도의 국교가 힌두교인줄 모르고,불교와의 인연만을 강조하는한국 대사와의 대화가 곤혹스러웠던 것이다.
한때 해외여행자들의 신변안전을 위해 출국전 보안교육을 시킨바있었다.이제 그런 식의 교육은 시대상황이나 해외여행자수를 고려할때 전혀 실효성이 없다.대신 교민.해외진출기업.여행자들의 경험담과 우리 공관들이 조사한 각종 안전위협사례 등을 종합한 소책자를 만들어 모든 해외여행자들의 필독 안내서로 사용하도록 하는 방안이 강구됐으면 한다.
해외 우리 공관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그러나 공관이 주재국내에서 경찰권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고,인원과 장비도 제한돼 있으므로 안전을 공관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결국 안전은 각자가 책임 지는 것이다.따라서 자신의 신변안전을 위해서라도 각자 절제되고 검소한 여행을 해야 할 것이다.
粱東七 외무부 본부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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