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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농구 보고 싶어, 국무회의 농땡이 친 적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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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주례를 여러 번 섰다. 근데 잘 안 되는 커플이 있더라. 여자 선수들이 순진하고 세상 물정을 깊이 몰라 ‘못된’ 놈들한테 당하는 것 같다. 안 되겠다 싶어 ‘W DREAM’이라는 유소녀 농구교실을 만들었다. 성교육도 하고 남자친구 사귀는 법, 화장하는 법 이런 걸 가르친다. 프로선수가 되면 돈이 생길 테니까 투자 요령도 가르치고.”

이 사람은 거창한 얘기 안 한다.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김원길(65) 총재. ‘총재라는 사람 언행이 너무 잘다’ 싶을 정도다. 화끈한 멘트가 없는 총재는 인기가 적다. 인기가 없는데 햇수로 1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결? 그는 입으로 한 일보다 행동으로 해치운 일이 많았다. 올해 남자프로인 한국농구연맹(KBL)이 새 총재를 물색할 때 기준이 ‘김원길 같은 인물’이었다.
23일 WKBL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요번 시즌까지만 하고 (총재를) 그만둘 거다. 너무 오래 했더니 내가 건방져졌다. 아는 게 많아지니까. 좀 지겹기도 하고.”

1999년 총재를 맡은 뒤 세 번 연임한 그의 임기는 2011년에 끝난다. 갑작스러운 퇴진 예고에 놀라며 살펴보니 왼 손등에 상처가 있다. “사고를 치셨군요”라고 넘겨짚자 “늙은 놈이 무슨…. 성질이 나는데 참느라고 손등을 긁어댔더니 까졌다”고 대답했다. 왜 성질이 났을까. 퇴진을 결심할 만한 일이 있었을까. 김 총재는 “그런 건 없다”고 잘라 말했다.

“KBL 쪽에서 김 총재에 대한 평가가 퍽 좋습니다?”
“KBL 김영수 전 총재는 훌륭한 분이다. 한 번 더 맡아 주실 줄 알았더니…. 난 가장 어려울 때 연맹을 맡았다. 더 나빠질 게 없는 상태였다. 그러니 욕먹을 일이 있었겠나.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어려울 때라서 있던 팀이 사라질 판이었다. 한 일이라고는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해체를 막은 것뿐이다.”

지금 여자농구팀은 6개다. 김 총재는 제7 구단 창단을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성과가 없다. “몇몇 기업이 한다고 했는데 그때마다 일이 터졌다”고 한다. 이번에도 한 기업이 창단을 약속했는데 금호그룹이 금호생명을 매각한다고 해서 변수가 생겼다. 김 총재는 이 말을 하면서 짜증을 냈다. 그러곤 툭 던지듯 말했다.

“이번에도 제7 구단이 안 되면 내가 만들 거다. 농담이 아니다. 내가 지금 재생에너지 관련 사업을 하는데, 이게 좀 괜찮다. 여자농구팀 정도는 만들 수 있다.”
빈말이 아니고 정말 관둘 생각인 것 같다. 김 총재는 아주 구체적으로 그만두기 전에 할 일과 그만둔 다음에 할 일을 설명했다.

“명예의 전당을 만들고 나가려 했는데 역사가 10년밖에 안 됐으니 그건 좀 그렇고…대신 기념관을 만들 거다. 장차 그게 명예의 전당으로 바뀌겠지. 강서구 등촌동에 마련한 여자농구회관 안에 만들 건데, 거기다가 여성 농구인 ‘계모임’용 방도 만들 거다. 농담이 아니다.”

이건 그만두기 전에 할 일. 그러면 그만둔 다음엔?
“돈 벌어야지. 왜, 못 벌 것 같은가? 나에 대해서 알잖아. 내가 ‘돈 벌겠다’ 그러면 어지간히 준비가 됐다는 소리 아니겠나. 돈이 좀 모이면 독립유공자 자손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할 것이다. 100억원은 모아야 이자가 나와서 장학금을 댈 것이다. 고 정도만 벌면 된다.”

KBL이 이상적인 총재로 꼽은 김 총재가 물러나면 WKBL이 버텨낼 수 있겠나. 김 총재는 “내가 그만둔다고 WKBL이 곤란을 겪지는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준비해 둔 게 있으므로 정상적으로 운영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경기인 출신 인사가 후임 총재를 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원길 총재는 취임하면서 “이 정도는 해야 ‘안 쪽팔린다’고 생각한 게 있다”고 했다. 재정 안정. 김 총재가 취임하기 전까지 WKBL은 타이틀 스폰서 영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첫해 여름리그 스폰서료는 1억5000만원 정도였다. 김 총재는 돌파력을 발휘했다.

“직원들에게 미디어에 노출될 때 타이틀 스폰서의 홍보 효과를 계산하게 했다. 165원억이 나오더라. 그 자료를 갖고 현대증권 이익치 사장을 찾아가 ‘5억원만 주면 160억원을 벌게 해주겠다’고 했다. 이 사장도 제안을 받고 ‘밑’에다가 계산을 해보게 했나 본데 거기서는 내가 제시한 액수보다 더 나왔다. 지금 타이틀 스폰서료는 17억~18억원 수준이다.”

한번은 삼성에 손을 내밀었다. 이학수 부회장이 “해주겠다”고 하면서도 입맛을 다셨다. 이유를 묻자 “삼성이 공익을 위해 지원하는데, 국회 같은 데서 삼성이 스포츠를 독점한다고 비판하더라”는 것이다. 김 총재는 혀를 찼다.

“난 삼성의 서운함을 이해했다. 자료를 걷어 가지고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을 찾아갔다. ‘당신들은 토요일·일요일에도 이자 받아 먹으니 토요일·일요일에도 경기하는 여자농구 스폰서 좀 맡으라고 하니 김 행장이 크게 웃더라. 이제는 스폰서 걱정은 안 한다. WKBL 회원 구단이 돌아가면서 스폰서를 맡고 있다.”

스포츠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김 총재에게는 정치인다운 본능이 있었다. 그는 스포츠와 미디어가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프로경기에 중계처럼 중요한 게 없다. 이게 돼야 스폰서도 붙고, 광고도 붙는 거 아닌가. 그래서 지난 시즌에는 인터넷 중계까지 했다. 지금 우리 연맹은 SBS스포츠와 5년 계약을 해놓고 있다. 전 경기 중계가 목표다.”

그는 총재를 하는 동안 매일매일 신났다고 한다. 특히 여자농구가 시드니 올림픽 4강에 갔을 때를 최고의 순간으로 꼽았다.

“참 신나더라. 역시 어떤 분야든 지도자(감독)가 잘해야 한다. 시드니 때는 이문규가 참 잘했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8강까지 갔는데, 기대 이상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정덕화가 수비 위주로 전략을 짜 선수를 잘 조련했다.”
점심에 와인으로 반주를 했다는 김 총재는 1시간 남짓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더니 피곤한 기색을 보였다. 술이 오르는지 얼굴이 붉어지고 자꾸 두 눈이 감겼다. 마지막 질문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정치에선 손 뗐나요?”

“인제 안 해. 농구보다 재미없어. 보건복지부 장관 할 때(2001년)는 지방에서 열리는 경기 보러 가느라 임시 국무회의에 빠진 적도 있다. 농땡이 친 거지, 낄낄…. 나중에 ‘농구 보러 가기로 선약돼 있었다. 국무회의는 임시였으니까 농구장이 먼저 아니냐’고 했더니 다들 웃고 말더라. 이제는 다 털고 돈 좀 벌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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