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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문화] 파리지앙, 재즈에 흠뻑 젖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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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 재즈 가수 강은영씨가 파리의 한 클럽에서 청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프랑스의 노래라면 샹송이 연상된다. 그러나 재즈의 인기도 이에 못지않다. 파리의 재즈 클럽들은 전후 프랑스에 수입된 미국 문화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프리카 문화가 섞이면서 일종의 '문화적 용광로' 역할을 한다. 실제로 전세계의 많은 유명 재즈 뮤지션들이 파리에 거주하며 공연하고 있다. 최근엔 재즈 뮤지션들 특유의 '잼(jam.합주)'이 활발하다. 전혀 모르는 사이인 재즈 뮤지션들이 함께 연주하는 방식이다.

◇재즈와 만난 한국 운동가요=지난달 25일 오후 11시 파리 중심부 샤틀레 지하철역 인근 롱바르가(街) 60번지. 파리에서 세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재즈 클럽 선사이드가 한 한국 가수의 공연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70평 남짓한 실내를 가득 메운 청중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랫말과 장구 장단에도 불구하고 시종 열띤 표정이었다. 재불 재즈가수 강은영씨가 보컬을 맡아 외국 재즈곡 중간중간에 한국 노래를 선보이는 독특한 공연 형태였다.

강씨는 1부에서 도종환씨의 시에 윤민석씨가 곡을 붙인 '오늘 하루'를 부른 데 이어 2부 첫곡으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열창했다. 중간에 10여분가량 장구연주도 끼워넣었다. '빼앗긴 들에도…'를 부르기 전 강씨는 "한국이 일본 식민지이던 때의 암울한 현실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래가 끝나자 청중들은 환호성과 함께 갈채를 보냈다.

공연장에서 만난 프랑스 재즈 가수 안느 뒤크로는 "장구 소리가 가볍고 순수하고 경쾌했다"고 칭찬했다. 자신을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출연 멤버라고 소개한 마리 프랑스 루설은 "타악기 하나로 무대를 장악하는 한국 음악에 놀랐다"고 말했다.

강씨는 서울대 88학번으로 노래 동아리 '메아리'에서 노래와 인연을 맺은 후 20대 내내 학생운동의 현장과 함께 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가극단 '금강'에 들어가 파업과 시위현장을 찾아다니며 노래했다. 이후 우연히 재즈 선생을 만나 재즈에 입문했다고 한다. 그녀는 요즘 파리에서 세 개의 재즈학교를 동시에 다니고 있다. IACP와 빌 에반스 피아노 아카데미, 재즈 프렐루드가 그것이다. "너무 욕심내는 것 아니냐"고 묻자 "한국에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어 단시간에 많은 것을 배우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재즈를 찾는 파리지앵들=프랑스에서 24시간 재즈만 전문으로 방송하는 라디오 방송국은 TSF, 파리 재즈, FIP 등 세 곳이나 된다. 다른 라디오 방송국에서도 재즈 프로그램은 거의 대부분 고정 코너를 장식하는 감초메뉴다. TV에선 채널 6에서 세계 유명 재즈 뮤지션들의 공연을 방영하는 '재즈 6'프로가 15년 넘게 장수하고 있다. 케이블 방송국 메조도 클래식 음악과 함께 재즈를 다루고 있다.

'재즈 맨'등 재즈 전문잡지를 비롯, 재즈 음반만 판매하는 전문상점 '재즈 코너'도 있다. 프낙과 버진 등 대형 음반점에도 재즈는 빠지지 않는 메뉴. 프낙에서 5년간 재즈 음반 판매를 담당했다는 로낭 스파텔은 "팝송보다는 시장이 작지만 기복없이 꾸준히 판매된다"고 말했다.

재즈 교육기관도 성인들을 위한 전문학원들과 파리시에서 구청별로 운영하는 음악원까지 다양하다. 파리에서는 10여 군데의 재즈 전문 공연장에서 매일 연주가 이루어지고, 400곳이 넘는 클럽과 바도 재즈 공연장 역할을 하고 있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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