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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성폭력 親告罪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85년 10월 일본의 최고법원은 4년이나 끌어온 한 미성년자간음사건에 대해 『16세 소녀와의 음행(淫行)은 처벌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성적 욕망의 충족만을 위해 여자를 유혹.협박 또는 속임수 따위의 방법으로 가진 성행위 」를 「음행」으로 간주하고,18세미만 청소년과의 음행을 처벌토록 규정한 후쿠오카(福岡)현의 청소년보호육성조례 16조를 합헌(合憲)으로 판시한 것이다.
이 사건은 81년 26세의 한 청년이 중학교를 막 졸업한 16세 소녀를 꾀어 15차례 이상 관계를 한 사실이 밝혀져 기소되면서부터 시작됐다.소녀 자신은 물론 그 가족들도 형사처벌을 원치 않았으나 청년은 1,2심에서 5만엔의 벌금형 을 받고 최고법원에 상고했다.결혼연령을 남자는 18세,여자는 16세 이상으로 규정한 일본민법을 근거로 『서로가 결혼을 전제로 합의아래성관계를 했기 때문에 「음행」에 해당되지 않는다』는게 상고이유였다.최고법원에서의 쟁점은 조례 위반 여부가 아니라 조례 자체의 위헌여부를 가리는 것으로 모아졌고 마침내 그같은 결론을 내리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소녀나 그 가족의 고소가 없는 한 사건이 되지 않는다.강간.추행 등 일련의 성범죄가 모두 「친고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아무리 끔찍한 성범죄를 저질렀더라도 치사상(致死傷)에 이르지 않고 피해자의 고발이 없는 한 죄 가 성립되지않는 것이다.대법원은 74년 6월 이와 관련한 주목할 만한 판례를 남겼다.한 여성이 두 남자로부터 폭행으로 강간당한 사건에서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고소취하로 강간죄를 면한 뒤 별도의 폭행죄로 기소됐으나,대법원은 『그 수단 인 폭행만을 분리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 처단할 수 없다』고 판시한것이다. 성폭력과 관련한 친고죄 조항의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미성년자에 대한 간음이다.미국에서는 12세 이하면 무조건 1급범죄로,18세 이하면 고액벌금형의 형사범으로 다뤄 강간과 폭력을 동일시하고 있다.일본도 미국방식을 따르고 있다.친 고죄가 존속하는 한 우리 사회는 「성범죄자들의 천국」이라는 악명을 떨쳐버리기 어렵다.신한국당이 성폭력의 친고죄조항을 폐지하는 등 성폭력법 개정을 추진중이라니 기대해 볼 만하다.그것이 성범죄를뿌리뽑는 첫걸음이 될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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