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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9월] “봄밤 , 그 말 자체가 미묘한 울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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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장원으로 ‘봄밤’이 뽑혔다. 정수자 심사위원은 “날씨는 쌀쌀한 가을인데 ‘봄밤’을 뽑을 수밖에 없었다”며 웃었다. 작품이 좋았다는 얘기다.

“봄에 써놓은 거에요. 고치고 또 고치고… 계속 손 보다가 이제야 보냈는데 벌써 가을인 거 있죠. 그렇다고 ‘봄밤’을 ‘가을밤’으로 바꿀 수는 없잖아요, 하하.” 이자현(36·사진)씨는 수상소식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연신 웃었다. 진실로 함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게 한 어느 봄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 아이들 재우고 나서 평소에 제가 쓰던 말들을 곰곰 떠올려 봤어요. ‘난 몰라’ ‘어쩜 좋아’ ‘기가 막혀’라는 말을 자주 쓰고 있더라고요, 제가.”

그 말들이 고스란히 시어가 됐다.

“봄밤은, 그 말 자체가 예쁘잖아요. 미묘한 울림을 가져다 줘요.”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으로 앓은 적은 없다. 다만 시 쓰는 일이 ‘위로’가 됐을 뿐이다. 힘이 들고 지칠 때 시를 쓰면서 스스로를 다독였다. 시조를 만난 건 작년 이맘 때다.

“이정하 선생님의 시집을 읽고 깊게 감동 받았어요. 우리 고유의 시조가 이렇게 아름다운 거구나 싶더라고요. 그 깔끔함 말이에요.”

그 때부터 틈틈이 시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 뽑힌 작품은 정형성을 파괴한 자유로운 형식이다. 이유를 물으니 시조 특유의 정형성은 살리면서도 조금은 자유롭고 싶었다며 웃는다.

“시도 쓰고, 시조도 쓰다 보니 두 가지 매력에 다 빠졌나 봐요.”

이씨는 주부다. 그것도 무척 ‘바쁜’ 주부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과 2학년인 딸을 돌보아야 하고 낮에는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다. 시간이 부족할 것 같은데 탁구도 배우고 요리도 배운다. 아이들의 만들기 숙제를 도와줄 때면 오히려 더 흥이 나는 건 그녀다. 아이들 학교에서 환경미화를 할 때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공예하는 걸 좋아해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예쁘다고 좋아해 주니까 신이 나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쉬는 날 부지런을 떨며 시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무리 바빠도 “충분히 쓸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욕심이 많다고 눙을 쳤더니 명랑한 대구 사투리의 억양이 물결치듯 수화기 너머로 퍼진다.

“부족한 저한테 이런 상도 주시고. 시에 정진하고 싶은 걸요. 시도 쓰고 시조도 계속 쓰고 싶어요. 정말, 정말 감사 드려요. 하하.”

임주리 기자



■ 이달의 심사평
감각과 서정 아우르는 힘 돋보여

 응모가 계속 늘어 고무적이다. 그러나 고시조에 머문 듯한 답습은 문제다. 습작 때부터 선입견을 벗어내야 새로운 시조에 닿을 수 있다. 전통의 형식 속에 내용의 혁신이 담겨야 하는 것이다. 그런 새로움이 없으면 ‘현대시조’라는 명칭도 무색해진다.

장원에 이자현 씨의 ‘봄밤’을 뽑는다. 가볍고 평이한 소품으로 보이지만 읽을수록 곡진한 울림을 지녔다. 첫 수 중장에 압축한 말들은 누구나 겪었을 법한 정황을 환기하고, ‘명치에/날아와 박힌’ 상처인 ‘불화살촉’이 강한 여진을 만든다. 그것을 뽑는 밤은 ‘무릎(이) 꺾’이는 밤이니, ‘봄밤’이라야 더 어울릴 것이다. 다른 작품들도 감각과 서정을 아우르는 힘이 있다. 하지만 둘째 수 종장 같은 표현은 재고를 요한다.

차상의 박은선 양은 언어 운용과 감각이 뛰어나다. ‘우물 밖 어둔 저녁이 물비늘을 흔든다’처럼 기교가 능하지만 울림이 약한 편이다. 고교생이라 시적 체험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시상을 형식에 급히 꿰어 맞추느라 더 공소해진 느낌이다. 여러 작품 중 ‘하늘, 뜨다’를 취한 것은 균제미나 압축미 같은 시조 미학에 대한 주문을 하는 것이니 더 고민하기 바란다.


차하의 김술곤 씨는 ‘스팸메일’과 날마다 싸우는 일상 속의 심리를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이런 유의 시상은 단순한 인식을 넘어서거나 비틀어야 효과를 발휘한다. 그렇지 않으면 산문을 끊어 나열한 모양새를 만들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그런 위험을 무리 없이 가다듬었지만, 너무 직설적인 표현들은 바꿀 필요가 있다.

응모작 수준이 엇비슷할 때는 선이 더 조심스럽다. 끝까지 망설이게 한 응모자가 홍원경, 장은수, 이동원, 이정홍 씨들이다. 그런데 발상이나 이미지에 주목하다 보면, 부적절한 표현들이 걸렸다. 특히 ‘겨우살이’와 ‘새의 지문’은 참신한 발상에도 불구하고 이완이나 작위성이 흠으로 작용했음을 밝힌다. 가을 더위도 꺾였으니 더 깊은 성찰의 시조가 나오리라 기대한다.

 심사위원=정수자 ·권갑하



 ◆응모안내=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 매달 말 발표합니다. 응모 편수는 제한이 없습니다. 응모 시 연락처를 꼭 적어주십시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겐 각각 10만·7만·5만원의 원고료와 『중앙시조대상 수상작품집』(책만드는집)을 보내드립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를 대상으로 12월 연말장원을 가립니다. 연말 장원은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당선자로 인정, 등단자격을 부여합니다.

◆접수처=서울 중구 순화동 7번지 중앙일보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10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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