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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보상운동' 주도자 서상돈선생 업적 재조명작업 전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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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일제 침략기 일본에 진 빚을 갚기 위해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서상돈(徐相敦.1849~1913.사진)선생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대구상공회의소에 의해 전개되고 있다.
대구상공회의소는 1억2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내년 6월 개통되는 지하철 1호선역에 기념벽화를 만들고 올연말까지 훈장을 추서토록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또 중구태평로 대구시민회관 앞마당에 서상돈선생을 기리는 기념비를,수성구범물동 천주교 공동묘지에 있는 묘소에는 추모비를 세우는 한편 선생의 업적을 담은 자료집도 내년 2월께 펴낼 계획이다. 서상돈선생은 1907년 2월 대구지역 상공인들이 만든 대구민의소(현 대구상공회의소)의 부소장으로 일하면서 일본에 진빚 1천3백만환을 갚자는 운동을 벌인 민족운동가이자 상공인.
빚은 1904년 한일협약에 의해 일본이 철도.항만등을 건설하면서 비용을 대한제국에 부담시킨 것으로 당시 세입예산 1천3백18만환과 맞먹는 거액.
그러나 서상돈선생은 『2천만 동포가 3개월간 담배를 끊으면 1천3백만환의 돈을 모을 수 있고 이를 갚으면 일제의 침략에서벗어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국채보상운동은 이후 황성신문등에 대서특필되면서 전국으로 번져1천여만환이 모아졌다.
운동이 이처럼 번져나가자 두려움을 느낀 일본측이 조정에 압력을 행사,운동본부 양기탁(梁基鐸)총무를 공금횡령혐의로 구속하면서 중단됐다.
서상돈선생은 17세때부터 등짐을 지고 한지(韓紙)를 팔다 낙동강 수로를 이용,쌀.소금등을 경남지역에 공급하면서 28세때 거부가 된 인물.
서상돈선생은 모은 돈을 희사해 중구계산동 현재의 계산성당을 짓도록 했고 대구광문회라는 출판사도 설립해 신교육 보급에 힘썼다. 기념사업은 지난달 대구상의 기획분과위원회가 서상돈선생이 지역경제계에 끼친 공적을 고려,지난달 기념사업을 벌이기로 결정함에 따라 이루어졌다.대구상의 강충(姜忠)전산부장은 『서상돈선생은 민족사에 기록될 독립운동가이자 위대한 대구지역의 경제인』이라며 『선생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되도록 추모사업을 벌여 나갈것』이라고 밝혔다.
대구=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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