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義로운 죽음에 대한 보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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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성추행범을 뒤쫓다 숨진 최성규(崔成圭)씨는 이 사회가 완전히썩고 병든 것은 아님을 증명해주고 있다.때로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이 사회가 어떻게 해서 그대로 지탱되고 있는지를 이제는 좀 알 것도 같다.崔씨와 같은 「 소금」이 사회구석구석에 있기에 그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지는 대개들 알고 있다.그러나 옳다고 여기는대로 행동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실제로 의로운 행동은 눈씻고 보아야 할 정도로 드물다.의로운 행동은 커녕자신에게 닥칠 해가 무서워,때로는 귀찮아서 절박 한 상황에 빠진 사람을 외면하기도 하는게 우리네다.그런 점에서 崔씨의 행동을 곱씹어보면 볼수록 더욱 더 우러러 보게 된다.
의로운 행동을 논리적 사고(思考)의 산물이라고 볼 수는 없다.그것은 순간적인 반사작용에 가깝다.평소의 개인적인 도덕률과 사회의 가치관이 어우러질 때 그러한 의로운 반사작용이 나온다고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과 학교에서 가치관교육과 함께 사회가 의로운 행동을 기리고 북돋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어떤 보상을 기대하고 의로운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그러나 그 희생에 대해 보답하는 것은 당연한 사회의 의무 다.또한 그것은 훌륭한 사회교육적 효과도 지닌다.
때문에 당국이 崔씨의 장례를 구민장(區民葬)으로 치르고 의사자(義死者)로 처우키로 한 것은 잘한 일이나 문제는 그 보상이미흡하다는데 있다.현재 「의사상자 보호법」에는 의사자의 경우 월 최저임금액의 1백20배,의상자의 경우 월 최 저임금액의 60배를 한도로 보상하게 돼 있다.최고 의사자의 경우 약3천6백만원,의상자의 경우 1천8백만원이란 이야기인데 다른 사고 보상액에 비해 너무도 낮은 수준이다.이래서야 누가 선뜻 몸을 내던질 것인가.
崔씨의 죽음에 보답하려면 백마디의 말보다도 이런 비현실적인 법규의 개정부터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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