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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깎아준다는데 조세 저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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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증세(增稅)는 민심에 반하고, 감세(減稅)는 민심을 달랜다’. 통념도, 경험도 그래왔다.

1977년 7월 박정희 정부는 부가가치세를 신설했다. 세수 증대를 위해서였다. 반발은 심했고 조세 저항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듬해 12·12 총선에서 공화당은 참패했다. 유신 치하였는데도 집권당인 공화당의 득표율(31.7%)은 신민당의 득표율(32.8%)을 밑돌았다. 투표율(77.1%)은 5·16 이후 최고였다. ‘정권 불신임’이란 평가가 나왔다. 80년 4월 결국 부가세 기본세율이 인하됐다(13→10%).

노무현 정부도 2003년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한 이후 곤욕을 치렀다. 한나라당은 반대 당론을 정했다. 2년 뒤 부동산 대책 일환으로 종부세를 강화하자 반발은 더 거세졌다.

이명박 정부도 세금 때문에 민심의 저항을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감세안 때문이다. 9·1 세제 개편안은 사상 최대 규모의 감세 카드란 평가를 들었다. 9·23 종부세 개편안도 마찬가지다. 여권에선 “세금 깎아준다고 욕먹기도 쉽지 않을 것”(주호영 의원)이란 하소연이 나온다.

① 서민 대 부자 구도=진보 정권은 10년간 한나라당을 ‘부자를 위한 정당’이라고 공격했다. 이른바 ‘서민 대 부자’ 구도다. 노무현 정부 때 특히 강력했다. 노 전 대통령 스스로 “부동산 부자들이 정책을 훼방한다”거나 “나중에 종부세 한 번 내 보라”라고 공격했다. 민주당은 이번에도 한나라당의 감세안을 두고 “부자 감세안” “2%를 위한 개편안”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그럴 때마다 움찔했다. 국민 대다수가 서민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경제가 어려워지고 양극화가 심해져 서민 대 부자의 갈등 구도가 더 잘 먹혀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24일 기자들에게 “(종부세) 법안이 논의되면 가진 자 대 못 가진 자라는 노 전 대통령이 설정한 프레임(구도)에 갇혀 버린다”며 “국민적 거부감이 오는 부분”이라고 토로했다.

②‘강부자 내각’의 거부감=이명박 정부는 가뜩이나 출범 초기부터 ‘부자 수석’ ‘부자 내각’이란 평을 들었다. 오죽하면 ‘강부자(강남 땅 부자)’란 비아냥까지 들었다. “부자니까 부자를 위할 것”이란 국민적 이미지가 더 짙어졌다. 야당에선 “종부세 감세로 혜택을 보는 장관·수석이 몇 명”이란 식으로 파고들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우리가 하는 말이 국민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른바 ‘전달자 거부 현상’이다.

③ 정교한 민심 관리 부족=24일 청와대 관계자가 국회에 들렀다. 소장파 의원들이 그를 둘러싸고 타박을 했다. “잘 좀 하지 이게 뭐냐.”

실제 여권에선 종부세 개편안에 찬성하더라도 청와대와 정부, 당 지도부의 처리 방식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다수는 “종부세 관련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곧 나올 텐데 왜 지금 개편하려는지…”라거나 “국민 공감대를 얻을 만한 사전 정지 작업이 필요했다”는 아쉬움이 많다.

장훈 중앙대 교수는 “감세정책엔 원래 정교한 목표 설정과 전략이 수반돼야 한다”며 “하지만 종부세 과정을 보면 계층 간 형평을 위한 보완장치에 대한 고민이 안 되었거나 전달이 안 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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