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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承三칼럼>良心의 法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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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2.12및 5.18사건을 심판하는 역사의 법정도 서서히 막내릴 채비를 하고 있다.열흘 뒤면 16명의 피고인에 대한 선고가 내려진다.앞으로의 재판에서도 1심의 판결을 뒤엎는 극적인 반전(反轉)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상식이고 보 면 오는 19일의 판결은 사실상 「최후의 심판」이라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아쉽고 허전한 느낌을 못내 떨쳐버리기 어렵다.과연 16명에 대한 사법처리로 광주의 비극은 보상이 된것이며 우리들은 교훈이나마 제대로 얻는 것일까.비록 법정에 서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인간이기를 거부한채 살인의 도구가 됐던 그 많은 일선 지휘관들과 사병들은 최소한 양심의 법정에라도 서서 지난날의 행위를 참회하고 있는 것일까.아니면 법정에 서지 않게 된걸 다행으로 여기면서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자기합리화나 하고 있는 것일까.이를 확인 할 길이 없는게 무엇보다도아쉽다. 『시위 학생을 잡으면 먼저 곤봉으로 머리를 때려 쓰러뜨리고는 서너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군홧발로 머리통을 으깨버리고 등과 척추를 짓이겼으며 얼굴을 위로 들게 해놓고 안면을 발로 뭉개고 곤봉으로 쳐서 피 곤죽을 만들었다…피투성이가 된 희생자가 늘어지면…걸레를 던지듯 트럭 위로 던져 올렸다.』(전남사회운동협의회편 「죽음을 넘어,시대의 아픔을 넘어」에서) 「화려한 휴가」로 이름지어진 공수부대의 초기 광주진압작전은 내내 이런 식이었다.너무나 끔찍해 이 시점에서도 인용하기가 망설여지는 사례가 숱하다.물론 이런 잔혹행위들에 광주참극의 책임을 모두 지울수는 없다.그러나 비극의 농도를 짙게 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면 그 책임도 마땅히 추궁돼야 하고,백보를 양보한다하더라도 최소한 그들로부터 참회의 말이라도 들어야 하는게 정의(正義)의 요구일 것이다.
검찰은 5.18사건 관련자들을 기소하면서 일선 지휘관과 사병들은 명령체계상 「인식없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논리로 사법처리의 대상에서 제외했다.이는 베를린 탈출자에 대해 총격을 가한 동독의 베를린장벽 수비대원들에게 잇따라 유죄판결을 내리고 있는독일의 사법부와는 정반대다.
동독 수비대원들은 「합법적 명령에 따랐을 뿐」「국가를 위해 국가가 요구하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라는 논리로 무죄를 주장했다.광주에서 공수부대원들이 한 행위와 동독 수비대원들이 한 행위를 견줄때 자의성(恣意性)이 더 강한 쪽은 오히려 우리 공수부대원쪽이다.그러나 독일 법정은 수비대원들의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민간인에 대한 사살명령이나 총기사용은 정당화될 수 없는 중죄」이며 「반인간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명령에 의한 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특히 탈출자를 정조준해 쏜 대원에 대해서는 「양심의 긴장」이 없었다는 이유로 무기징역이란 중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독일 사법부의 이런 논리에는 역사와 전례(前例)가 있다.2차세계대전후 나치지도자들을 심판한 뉘른베르크재판의 판결이 그 한가지다.당시 나치지도자들도 국가와 당의 명령을 내세우며 책임을모면하려고 했다.그러나 최종판결의 골자는 「평화 의 파괴」「인간성의 파괴」는 명령수행의 논리로 덮어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유대인 학살을 총지휘했던 아돌프 아이히만 역시 자신은 「법을 따르는 시민으로서 명령을 지켰을 뿐」이라고 변명했지만 「인간파괴의 범죄」로 규정돼 극형을 선고받았 다.
당시 이스라엘 재판부는 아이히만을 단죄하면서 자신은 유대인 학살에 협조하고 방조했을 망정 정책을 결정하지도,실행하지도 않았다는 항변에 대해 판결을 통해 이렇게 답변했다.『자기 손으로살인도구를 사용한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면 떨 어질수록 그만큼 책임의 정도는 증가한다.』이스라엘 재판부의 이 논리는 수긍할 수 있다.아무리 일선 지휘관들과 사병들의 행위가 반(反)인간적이었다 한들 그 책임이 그것을 계획하고 총지휘한 사람들의 그것 이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어차피 법률적으로도 이미 단순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은 불가능하다는 검찰의 주장도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모든 논리를 다 받아들인다해도 성에 안 차기는 마찬가지다.그것은 아직도 변명과 자기합리화만 요란할 뿐 그 어느누구로부터도 제대로 된 참회는 나온바 없기 때문이다.고작 16명에 대한 심판으로 5.18을 마무리지을 수는 없다.19일은일선 지휘관과 병사들은 물론 그 시절에 침묵했던 모든 이들이 다 함께 「양심의 법정」에 서는 날이어야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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