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확대 계기로 '닮은꼴' 國旗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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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구촌 몇몇 국가의 국기가 서로 비슷해 혼동을 주는 바람에 갖가지 사건이 속출하고 있다.

1일 나란히 유럽연합(EU)의 새 회원국이 된 슬로베니아와 슬로바키아는 이름만큼이나 국기도 닮았다. 하양.파랑.빨강의 가로줄 세개는 똑같고 왼쪽 위에 그려진 문장(紋章)만 다르다. 슬라브인이 사는 두 나라의 국기에서 문장을 빼면 같은 슬라브 국가인 러시아 국기와 똑같기도 하다.

나라 이름과 국기가 비슷하다 보니 국제사회에서 두 나라를 혼동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로마를 방문한 슬로베니아의 안톤 로프 총리를 슬로바키아 총리라고 잘못 소개했다. 앞서 루마니아는 밀란 쿠찬 슬로베니아 전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의전행사장에서 슬로바키아 국가를 연주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자 슬로베니아에선 국기를 바꿔서라도 혼동을 줄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독일 언론들이 1일 보도했다. 슬로베니아는 연평균 소득이 1만달러를 넘고 슬로바키아는 4000달러도 안 된다. 슬로베니아는 자국이 국제사회에서 슬로바키아와 비슷한 빈국(貧國)으로 비쳐 해외투자와 교역에서 손해를 볼까봐 우려하는 것이다.

동유럽의 루마니아에선 국기 때문에 대통령이 잇따라 곤욕을 치렀다. BBC방송의 해외언론 모니터에 따르면 일부 루마니아 언론은 최근 아프리카 중부의 차드와 자국의 국기가 똑같다며 유엔에 이를 해결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유엔의 결정에 따라 국기를 바꿔야 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파랑.노랑.빨강 줄이 세로로 나란히 있는 양국 국기는 푸른색의 채도를 제외하곤 똑같다.

이에 대해 이온 일리에스쿠 대통령은 "국기를 바꾸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루마니아 외무부는 "1997년 '산업재산권 보호를 위한 파리협약'에 의거해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 국기를 등록했으며 1년간의 이의제기 기간 중에 차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또 차드 정부가 국기문제를 유엔에 제기했다는 공식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며 보도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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