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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寧彬칼럼>'깡'의 실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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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17일간 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우리 선수들의 끈질긴 뒷심 부족과 악착스런 근성 부족을 자주 보았다.경험과 기술은 앞서 있지만 결국 뒷심이 없어 패한 아쉬운 경기가 여러 차례 있었다.우승이 예상된 선수는 대체로 은메달에 머물렀 고,예상밖의선수가 악착스런 경기운영으로 뜻밖의 수확을 거두는 이변은 끝내일어나지 않았다.
금메달은 좋고 은메달은 별볼일 없다는 1등주의 사고방식을 부추기자는 뜻이 아니다.어째서 이길만한 능력이 있으면서도 아깝게지느냐는 패인(敗因)분석이다.뒷심과 「깡」 부족 현상이 지금 우리 사회에 넓게 만연돼 있고 그 현상의 특징적 표출을 이번 우리 선수단 경기에서 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뒷심과 「깡」이란게 무엇인가.뒷심이란 체력의 남은 힘(餘力)이다.힘은 부족하지만 오기와 정신력으로 버텨 이겨내는게 우리식「깡」의 위력이다.「깡」은 체력이기보다 정신력이다.
비슷한 체력에 비슷한 기술력을 지녔으면서도,아니 그보다 못한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영광의 승리를 거둔게 바르셀로나의 황영조였고 권투와 레슬링 부문의 이변 속출이 모두가 우리식 「깡」의 결실이었다.그게 불과 4년 전이었지만 이번 올림 픽에선 어떤 「깡」도 보질 못했다.
「깡」의 정신력은 어디서 오는가.배고픔을 이겨내겠다는 「헝그리」정신이다.가난을 이겨내고 잘 살아보자는 위기극복의 정신 표출이 「깡」이었는데 이제 그 정신이 올림픽에서 사라졌고 이 사회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뒷심도 달리고 「깡」도 사라졌다면 우리가 버틸 힘은 무엇인가.
물론 「깡」이란 정상적인 힘은 못된다.「깡패」「깡다구」등에서보듯 「깡」이란 좋은 뜻의 말이 아니다.그러나 숱한 전란과 침략을 겪으면서도 오늘까지 버텨온 힘은 실은 「깡」의 위력이 아니었던가.한강의 기적도 선의의 「깡」이었고,애틀 랜타올림픽보다훨씬 훌륭한 88올림픽을 치른 저력(底力)도 우리 특유의 「깡」이 아니었던가.그런데 이 「깡」을 국민소득 1만달러 소리가 나오면서부터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깡」부재(不在)현상은 경제지표에서 가장 두드러진다.30년래우리 경제의 바탕을 이루었던 저축률이 최근들어 뚝 떨어졌다.저축률 30%선이 마침내 무너졌다.악착스레 벌어 한푼 쓰지 않고모으겠다는 의지의 실종을 단적으로 반영한다.수 출입국(立國) 깃발을 나부끼며 30년래 수출로 먹고 살았지만 수출증가율이 지난해의 3분의1수준으로 크게 줄면서 올해 경상적자가 1백20억달러나 예상된다.
저축.수출이 격감한데 역비례해 호화사치성 품목은 없어서 못팔고 외국 여행경비는 한해 80억달러가 넘어서면서 국제수지 역조의 중요 변수로 자리잡았다.수입원가 1만2천원짜리 청바지가 시중에서 9만5천원에 팔리고 있다.수입가의 무려 8 배나 되는 외제 청바지가 없어서 못파는 실정이다.외제 화장비누.냉장고.청소기등 생활용품이 국산의 10배 가격이지만 비쌀수록 잘 팔리는게 요즘 우리의 소비생활 패턴이다.근검절약의 「깡」은 사라지고흥청망청의 소비풍조가 생활화하고 있다 .힘든 일은 외국근로자에게 맡기고 우아하게 쓰고보자는 바람이 공항에서 시장에서 가정에서 불고 있다.
체력.경제력.국력의 근거는 힘이다.체력의 「힘」은 근육 수축능력이다.ATP(아데노신3인산)가 ADP(아데노신2인산)로 분해되면서 생기는 에너지다.ATP의 복원능력을 개발해 경기와 선수체질에 따라 과학적으로 적용한 것이 미국 스포 츠 과학의 노력이었고 그 개가가 44개 금메달로 나타났다.
우리 경제력의 힘과 뒷심은 자본재.소비재 수입을 줄이고 경쟁력 강한 상품을 수출함으로써 생겨난다.과학적으로 잘 관리하고 강한 훈련으로 단련된 구조적 힘을 가져야 올림픽에서도 이기고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지닐 수 있다.이 뒷심이 달 린다면 그나마 정신력으로 밀고나가는 「깡」이라도 있어야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뒷심도 없고 「깡」도 없다.
지난주 경제난국 타개를 위해 경제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여 격의없는 대화를 나눈다 했다.대화 내용인즉,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는 당장 해결할 수 없으니 과소비 추방과 소비절약을 국민에게호소하자는 것이었다.구조적 힘이 모자라니 국민 의 「깡」에 호소하자는 것이다.지난 3년반 동안 구조적 힘을 축적못한 정부에도 큰 책임이 있지만 이를 따지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 사라진 「깡」을 재복원하는 근검절약 정신의 부활이 당장 시급하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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