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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킬 빌 vol.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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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분량이 길어지면서 ‘킬 빌’은 1,2편으로 나눠 개봉하는 전략을 택했다. 주인공이 다짜고짜 복수극을 벌이기 시작하던 전편과 달리 이번에 개봉하는 ‘킬 빌 vol.2’는 복수극의 전사(前事), 즉 주인공이 내공을 쌓고 고행을 겪는 과정에 많은 부분을 할애해 무협극의 전통적인 구도를 완성한다.

금발의 백인여성이 사무라이 칼을 쥐고, 현란한 홍콩영화식 액션을 선보였던 복수극 '킬 빌'이 과연 어떻게 끝을 맺을까. 두번째 이야기인 '킬 빌 vol.2'가 오는 14일 국내 관객과 만난다. 단언하건대 이 영화는 지난해 가을 개봉한'킬 빌'의 속편이 아니다.

막대하게 늘어난 촬영분량에 조바심을 낸 제작사가 편집단계에서 1, 2편으로 나눠 개봉하자는 제안을 내놓았고, 자연히 이번에 선뵈는 것은 같은 이야기의 후반부다. 전편에서 보여준 '죽음의 88인과의 대결'이나 '청엽정 결투'같은, 두고 두고 회자될 눈부신 액션에만 기대의 초점을 맞춘 관객이라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전편은 일본을 제외한 나라에서는 일부 장면이 흑백으로 처리될 만큼 유혈이 낭자했다. 무협지의 공식대로라면 이런 냉혹한 복수에는 그만큼 처절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적을 쓰러뜨리기까지의 고행과 수련이 필수적이다.

후편에서 감독은 전편의 잔혹한 액션을 답습하는 대신, 전편에 없던 이런 요소를 보충해 '킬 빌'이라는 동서양 변종무협극을 완결짓는 전략을 택했다. 뛰어난 킬러였던 주인공이 왜 시골남자와 결혼해 손을 씻으려 했는지, 조직의 동료들이 왜 임신부의 몸인 주인공을 습격했는지 과거와 현재, 흑백과 컬러 화면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되짚어 나간다. 이렇게 완결된'킬 빌'은 퀜틴 타란티노 감독의 동양액션물에 대한 숭배가 겉멋 수준이 아님을 확신하게 한다.

감독은 후편의 전반부에 미국 서부영화의 분위기를 가미했다. 결혼식을 준비하던 주인공'브라이드'(신부)가 조직의 두목 빌이 보낸 킬러들에게 습격당한 교회의 황량한 풍경, 습격조 4인 가운데 빌의 남동생을 사막으로 찾아가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일사천리로 복수가 진행되던 전편과 달리 이번에는 주인공이 극한적인 위기에 처한다. 관객들이 기대하던 본격적인 동양액션이 등장하는 것은 이 때부터다.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주인공은 과거 중국무술의 고수에게서 수련을 쌓던 과거를 회상하는데, 까마득한 계단을 물지게를 지고 오르내리고, 송판을 부수느라 피투성이가 된 주먹으로 경련을 일으키며 젓가락질하는 모습이 동양의 무협물에서 익히 보아온 그대로다.

감독은 하얀 수염을 쓰다듬는 스승의 모습을 카메라가 빠르게 클로즈업하는 기법까지 홍콩액션물을 본뜨면서 자신의 경외감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과거 회상 장면에는 감독이 전편 개봉직전 인터뷰에서 귀띔한대로, 한국계 여성 액션배우도 등장한다.

이렇게 쌓아올린 주인공의 내공이 또 다른 여성 킬러와 좁은 트레일러 안의 대결에서 폭발하는 장면은 후편의 액션 가운데 절정을 이룬다.

호리호리한 몸매의 여배우 우마 서먼을 무시무시한 킬러로 변신시킨 감독은 끝까지 복수극의 냉혹함을 관철한다. 참, 이번에는 주인공이 '브라이드'가 아니라 본명'키도 베아트리스'임이 일찌감치 공개된다.

전편에서 수수께끼처럼 등장했던 빌의 실체 역시 뚜렷해진다. 마침내 키도가 최후의 복수를 위해 그와 마주하는 순간, 임신한 상태에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어린 딸이 등장한다. 딸을 돌봐온 것은 물론 과거 키도의 두목이자 연인이었던 빌이다. 이런 기묘한 상황에서 키도는 복수를 결심한 킬러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흔들림없이 선택한다. 빌 일당의 말마따나 그들은 '복수를 당해 마땅한 자들'이지만, 키도 역시 죄없는 희생자는 결코 아니다. 복수가 완결되는 순간 키도는 무협극의 모든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성취감뿐 아니라 회한의 감정 역시 동시에 맛본다. 18세 이상 관람가.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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