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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地圖>문학 22.方外문인 글로 '나'를 태우는 불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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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시대의 탓이라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쓸 수 없는 것은 시대를 잘못 만난 탓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도대체 어느시대,어느 사회에서 문인들이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는 자유를 누려왔던가.아니 그런 날이 올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다면 자신을 속여도 한참 속이는 일이다.한 줄의 글이라도 써본 사람이면 안다.글 쓰기의 진정한 자유는 시대나 사회나 그 누구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고 바로 자신으로부터 얻는 것임을.
그렇다.아무리 시퍼런 독재의 칼날 아래서도 목숨을 걸고 쓰면못쓸 글이 없다.조선시대 이 나라의 큰 선비들은 임금에게 자기의 생각을 전하다가 귀양살이를 하고 사약(賜藥)을 받는 일을 무수히 겪었었다.감옥이 두렵고 불이익이 겁나고 식솔들의 얼굴이떠올려져 붓이 자꾸 옆길로 간다고 말하는 것이 작가로서는 솔직한 고백이 될지언정 시대를 잘못 만나 내 글을 못쓴다는 것은 궁색한 핑계일 수밖에 없다.이것은 물론 나부터의 얘기다.
그래서 나는 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의 불기(不기)의 삶에 무릎을 꿇는다.그는 다섯살 때 이미 세종으로부터 장래를 약속받은 몸이었다.그러나 수양이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읽던 책을 똥통에 처박고 삼각 산을 내려왔다.사육신의 시신을 거두고 단종의 곤룡포를 챙겨 사당에 모시고…,산천을 떠돌며 시를 쓰고 시를 썼다.세상을,시대를 몸으로 꾸짖고 호령했다.
뒷날 선조의 명을 받아 율곡(栗谷)이 쓴 『김시습전』은 눈이부셔 다 읽지를 못한다.허균도 『광해군일기』나 신흠(申欽)의 글에서는 개.돼지 취급을 받았다.그러나 후세사가들은 허균을 큰작가,큰 시인으로 받들고 우러렀다.진정한 문인 이 안주할 시대는 없다.시대와의 불화(不和)없이 무슨 글을 쓸 수 있겠는가.
다만 극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을 뿐,나를 철저히 깨뜨려 얻는 자유를 부러워 할지언정 광기로 바라봐서는 안된다.
문학(예술)은 무릇 나를 불태워 얻는 불꽃이 아닌가.우리 시대 불기의 시인 공초(空超)의 임종게가 머리를 친다.
「자유가 나를 구속하는구나!」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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