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40도 고열보다 뜨거운 투혼 ‘천재성’ 다시 꿈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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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누아 세이루(마르세유)와 공을 다투던 박주영(AS모나코·(右)이 한 발 앞서 공을 터치하고 있다. [마르세유 AP=연합뉴스]

 박주영(23·AS 모나코)이 달라진 건가.

상대의 움직임을 역이용하는 엇박자 드리블이 살아났고, 전에 없던 투혼이 뜨겁게 전해온다.

22일 새벽(한국시간) 프랑스 마르세유 벨로드롬 스타디움에서 열린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와의 원정 경기. 전날 몸살감기로 열이 40도까지 오르는 악조건 속에서도 그는 예리한 드리블과 몸을 내던지는 슬라이딩으로 골을 노렸다.

1골·1어시스트를 기록했던 14일 프랑스리그 데뷔전(로리앙전)처럼 공격포인트를 올리지는 못했지만 히카르두 고메스 감독과 팀 관계자들은 그의 악바리 근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의 몸놀림은 부담감을 벗어던져 가볍다. ‘유럽에서 성공을 쓴다’는 새로운 목표를 가슴에 품으니 3년 전처럼 다시 춤추기 시작했다.

▶부담감 훌훌, 장점 살아나

너무 완벽한 것에 집착하다 장점을 잃고 헤매던 국내 경기와는 크게 달라졌다. K-리그를 대표하는 스타에게 매 경기 골을 바라던 한국과 달리 이곳에서는 한 명의 축구선수일 뿐이다. 그는 “K-리그에서는 심리적으로 조급했던 것 같다. 모나코에 온 후 여유를 되찾았다”고 했다. 그는 “유럽은 템포가 빠르고 패스의 타이밍과 질, 정확도가 좋다”며 “미드필드에서 만들어 가는 플레이를 즐기고 있다”고 했다.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 축구할 맛이 난다.

▶생존 본능에 강인함 생겨

‘유럽 무대에서 살아남겠다’는 강한 동기는 박주영의 투쟁심을 되살렸다. 그가 아프다는 소식에 히카르두 감독은 “전반만 뛰라”고 만류했지만 이를 악물고 90분 풀타임을 소화했다.

지난 7월 K-리그 최고 라이벌전 수원전을 앞두고 경미한 무릎 통증에도 결장을 요청하던 때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경기를 마친 그는 오한 증세 때문에 두툼한 점퍼를 입고 지퍼를 목 끝까지 치켜 올리고 인터뷰에 임했다. “어제부터 열이 났지만 오늘 90분을 뛰면서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말에는 독기가 담겨 있었다.

▶킬러의 이기심을 길러야

이날 박주영은 전반 32분 왼쪽 측면에서 발꿈치로 공을 툭 차올려 수비수를 완벽하게 제쳤다. 30m를 내달린 후 마르세유 골키퍼 만단다와 맞섰지만 동료 나미니에게 패스하려다 수비수에게 걸렸다.

프랑스 스포츠채널인 카날 플뤼스 해설위원들은 다양한 그래픽으로 이 장면을 분석하며 “스트라이커가 슛을 아껴서는 안 된다. 박주영이 두 명의 수비수를 뚫고 크로스하기보다는 골문을 향해 슛을 날렸어야 했다”고 입을 모았다.

유럽에서 양보는 미덕이 아니다. 오로지 골로 평가받을 뿐이다. 프랑스 스포츠전문지 레퀴프가 박주영에게 팀 내 최저 평점인 4점을 준 것도 이 때문이다. 축구 사이트인 ‘풋볼.fr’은 “활발한 움직임과 생동감은 있었지만 골 찬스 때 서툴렀다”고 평가했다.

박주영은 그 해답을 첼시전에서 골을 넣은 선배 박지성에게서 찾았다. 그는 “지성 형에게서 유럽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고 싶다. 형은 누구나 부러워하고 존경할 만한 플레이를 보여줬다”며 “좋은 팀과 좋은 경기를 하다 보면 내 플레이도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르세유=최원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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