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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에 겨울옷 보내자” 한인 유학생들 팔 걷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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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동아리 ‘한국어교육중심’ 빈진경 회장(왼쪽에서 셋째)과 회원들이 18일 한국 유학생 구도경양(사진 맨 왼쪽)의 집을 방문해 쓰촨 지진 이재민에게 보낼 옷을 기증받고 있다. 이들은 기증받은 옷을 중국 홍십자(紅十字·적십자)를 통해 기탁할 예정이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21일 오후 중국 베이징(北京)의 최대 번화가인 왕푸징(王府井) 인근의 한 성당. 한국인 신도들을 대상으로 한국인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는 이 성당에서 이날 뜻깊은 행사가 하나 열렸다.

쓰촨(四川) 대지진 이재민에게 따뜻한 겨울옷을 보내는 운동이었다. 한국인 신도 30여 명이 1인당 옷을 5~10벌씩 기증했다. 한 한국인 여성은 “지진으로 크게 놀라고 상처받은 이재민에게 더 좋은 옷을 주고 싶어 아직 포장을 뜯지도 않은 새 옷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베이징대학에서 2003년부터 중국 학생에게 무료로 한국어를 가르쳐온 한국인 유학생들의 교내 봉사 동아리인 ‘한국어교육중심’이 주도했다. 베이징대 경제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빈진경(23·여) 한국어교육중심 회장은 “한국인들의 작지만 따뜻한 마음이 쓰촨 지진 이재민과 중국인에게 전해져 한국인의 이미지가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베이징대학의 교내 전자게시판(BBS)에 한국인 비판 글이 올라올 정도로 중국 사회에서 혐한 기류가 생겨났다”며 “그런 상황에서 재중국한국인회의 ‘겸따마다 운동’을 소개한 중앙일보 보도를 접한 후 중국 사회에서 한국인의 이미지 개선 노력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들은 쓰촨성에서 아직도 여진이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달 초 빈 회장 등 한국어 교사 20여 명이 “한국인이 나서서 중국 이재민이 따뜻하게 올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옷 보내기 운동을 벌이자”고 의견을 모았다. 유학생들은 한글 홍보 전단지 1000장과 중국어 전단지 600장을 만들었다.

“올림픽 성공에 열광하고 있는 지금, 쓰촨성 주민은 옷이 부족해 겨울 준비에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내주시는 옷 한 벌은 그들에게 금메달보다 더 값진 의미가 될 것입니다.”

학생들은 이런 호소가 담긴 홍보 전단지를 들고 베이징대 등 대학이 밀집한 우다오커우(五道口) 지역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다른 학생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빈 회장은 “미국·독일·태국에서 온 외국인 유학생까지 ‘중국인을 위해 한국 유학생이 나섰으니 우리도 동참하겠다’며 호응했다”고 밝혔다.

베이징대 기숙사에서 홍보 활동에 나선 11일에는 마침 그곳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하고 있던 쉬즈훙(許智宏) 베이징대 총장과 조우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쉬 총장은 “나도 지지한다.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해줬다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정연순 한국어교육중심 부회장이 전했다.

정 부회장은 “길거리에서 만난 중국인 아주머니께서 ‘한국 유학생들이 대견스럽다’고 칭찬해주셔서 힘이 났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얻은 유학생들은 13일 재중 한국인 밀집 지역인 왕징 지역으로도 진출했고, 한국인 교회·성당 등 종교단체에도 동참을 촉구했다.

홍보 전단지에 인쇄된 연락처를 통해 전화가 쇄도했다. 한국어교육중심 유학생들은 14일부터 삼삼오오 모여 한국인의 집을 찾아다니며 옷 수거에 들어갔다. 21일까지 기증된 옷은 1000여 벌이나 됐다. 새 옷도 적지 않았다. 옷 대신 성금을 맡긴 사람도 잇따랐다.

유학생들은 이 옷을 깨끗하게 세탁, 이재민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빈 회장은 “세탁소에 맡기면 추가로 상당한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유학생들이 직접 빨래해 최대한 깨끗한 상태로 이재민에게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유학생들은 23일까지 옷을 더 기증받고 중국 건국기념일인 국경절(10월 1일)에 이재민들이 받을 수 있도록 중국 홍십자(紅十字·적십자)를 통해 기탁할 예정이다. 유학생들은 옷을 보낼 대상으로 쓰촨의 두 학교를 물색해둔 상태다.

이들 유학생은 이번 운동으로 반한 감정 해소 노력이 끝났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빈 회장은 “매 학기 200여 명의 중국인 학생에게 더 열심히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국 문화를 전파해 한국인에 대한 호감과 이해도를 높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베이징 근교의 고아원·양로원을 위로 방문하는 방안도 회원들과 상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한 감정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는 일시적 이벤트보다 지속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는 “중국에서 잘못 행동한 한국인도 있겠지만 중국을 사랑하는 한국인이 더 많다는 사실을 확인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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