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파는 요즘도 필리핀에서 귀빈 대접을 받습니다. “올해도 세 차례나 초청받아 다녀왔다”는 그는 “현역에서 은퇴한 지 34년이 됐는데도 나를 기억한다는 게 신기하다. 필리핀에 가면 고향에 간 것 같다”고 얘기했습니다. 그가 경기장에 나타나면 누군가 달려 나와 귀빈석으로 안내합니다. 전반전이 끝나면 장내 아나운서는 “아시아 농구의 전설 신동파가 왔다”고 소개합니다. 관중은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재미있는 것은 ‘신동파’가 행운의 상징이라는 점입니다. 필리핀 골프장에서는 좋은 샷을 하거나 버디를 잡으면 “나이스 샷” 대신 “동파”라고 외친답니다. 시내버스나 택시 중에는 운전석에 ‘신동파’라고 써서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운전사에게 물어 보니 “손님도 좋아하고 일이 잘 풀린다”고 합니다. 실제로 필리핀에서 ‘동파’는 ‘일이 잘 풀린다’는 뜻으로 통한답니다. 프로농구 KT&G의 김호겸 사무국장은 “필리핀에서 농구 쪽 일이 난관에 부닥칠 때 신동파씨 전화 한 통화면 일사천리로 해결된다”고 귀띔합니다. 신기한 ‘동파 효과’입니다.
필리핀에서 축구나 야구는 관심 밖입니다. 오로지 농구입니다. 필리핀에서 최고 직업은 호텔리어(여자)와 농구선수(남자)랍니다. 오죽하면 필리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3개를 꼽으라면 모두 “농구, 농구, 농구”라고 대답하겠습니까. 14일 마닐라 아라니따체육관(2만5000석)에서 열린 대학농구 준결승전은 만원이었습니다.
17일에는 KT&G가 전지훈련 중인 ‘디 아레나’에서 고교농구 지역결승전이 열렸는데 ‘오빠 부대’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필리핀이니 지금도 신동파가 기억되는 모양입니다. 독일의 젊은 축구팬들이, 한국의 젊은이들이 보지도 못했던 차붐과 래리 버드를 얘기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마닐라=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