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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에디터 칼럼

김정일 이후에 거는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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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모든 게 욕심 때문이다. 낙농업자는 우유에 물을 타고, 그걸 감추기 위해 멜라민을 넣었다. 단백질 함량을 높여 검사관을 속이려 한 것이다. 접착제에 쓰는 멜라민을 먹으면 방광·신장에 결석이 생긴다고 한다. 암이 발병할 수도 있다. 돈에 눈이 어두워 젖먹이에게 독극물을 먹인 것이다. 계란까지 가짜를 만드는 정도이니 중국에서 진짜는 무엇이냐는 말이 나온다.

그런 중국에서도 희망을 본다. 중국이 변화를 시작한 것은 덩샤오핑(鄧小平)의 집권 이후다. 덩이 실질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것은 1981년. 겨우 27년 전이다. 그런데도 부끄러운 치부들을 드러낼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치부는 감출수록 더 썩는다. 삼성전자를 일류로 나서도록 충격을 준 것도 불량 세탁기를 조립하는 과정을 담은 사내방송 테이프(93년)였다.

76년 중국 탕산(唐山)대지진에서 27만5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도 중국 당국은 철저히 은폐했다. 사람을 구하는 일보다 민심이 흔들리고, 정권의 안전이 위협받는 걸 먼저 걱정한 탓이다. 쓰촨대지진의 비극적 현장을 CC-TV가 생중계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현장으로 날아가고,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눈물을 흘리며 구조를 독려했다. 이로써 잃은 것 이상으로 얻는 것이 많다. 가장 큰 소득은 투명성에 대한 국제적 신뢰다.

이런 변화가 갑자기 온 것은 아니다. 천재지변까지 통치자의 부덕으로 연결하는 제왕적 권력구조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신격화된 통치자를 흠집 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고리를 깬 게 덩샤오핑이다. 그는 82년 12대에서 개인 우상화와 개인 독재를 금지하고, 임기제·은퇴제를 도입했다. 국가주석을 두 번 이상 연임하지 못하도록 했다. 70세 이상이거나 2기 이상은 정치국원으로 선임될 수 없도록 했다. 장쩌민(江澤民)이 후진타오에게 권력을 넘기고, 차기 시진핑(習近平) 체제를 준비하고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미국식 민주주의와는 다르지만 양쪽을 관통하는 건 투명성·공개성·예측 가능성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심상치 않다. 이미 권력이 넘어갔다는 소문에서 수술을 받고 회복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19일 판문점에 나온 현학봉 북한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은 “우리나라 일이 잘 되지 않기를 바라는 나쁜 사람들의 궤변”이라고 흥분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장남 김정남도 중국 정부 관계자에게 “염려해줘서 고맙다. 세월은 속일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하니 뭔가 이상이 생긴 건 틀림없어 보인다. 북한 당국의 태도는 체제 때문이다. 1인 체제에서 수령의 건강은 체제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

김일성 주석 때부터 북한은 몇 번이나 중국식 개방을 모색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주저앉아 버렸다. 김 위원장이 후계 체제를 굳힌 것은 70년대다. 그러니 80년대 들어 변화를 시작한 중국이 상전벽해(桑田碧海)한 것과 비교하면 결국 김정일 시대는 실패한 셈이다. 김 위원장은 최근 군관마저 굶고 있다는 보고에 격분했다는 소식도 있다. 그런 사정을 여태 몰랐다는 말인지 어이가 없다. 북한은 주민의 생존을 담보로 핵무기 개발에 모든 힘을 쏟아 부었다. 그걸 무기로 ‘앵벌이’해서 살겠다는 생각일까.

김정남의 발언에서 더 주목을 끄는 것은 후계 구도다. 그는 “부자 권력 세습을 3대째 이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미 집단지도체제가 가동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고, 김 위원장의 부인 김옥이 장칭(江靑)처럼 권력을 장악할 것이란 추측도 있다.

누가 권력을 잡건 우리가 상관할 바 아니다. 하지만 문혁기의 중국처럼 이념을 앞세워 주민을 대기근으로 내몰지만 말았으면 싶다. 새로운 길을 가는 데 모험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미 중국이 걸어가 본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중국과 미국은 체제 전복을 원치 않고, 대결만 포기한다면 돕겠다는 남쪽도 있지 않은가.

김진국 정치·국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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