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황토빛 물바다 邑內가 사라져-水魔가 할퀸 연천邑 현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경기도연천읍은 아예 떠내려가고 없었다.연천읍에서 14㎞남쪽,연천군청산면초성리 철도역은 육지의 끝이었다.논도,도로도,집도 보이지 않았다.
도도하게 소용돌이치는 급류를 타고 돼지.닭등 가축이 비명을 지르며 떠내려갔다.
높아만 보였던 송전탑은 끝부분만 삐죽이 솟아올라있었고 청산면을 가로지르는 신천도 범람,고추밭.오이밭을 모두 삼켜버렸다.침수를 막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쌓던 농부들은 털썩 주저앉아 망연자실해 강물만 응시했다.
차탄천이 범람해 연천읍이 물에 잠기기 시작한 것은 27일 오전7시50분.
연천군연천읍차탄리 상수도 공사장에서 포클레인 기사로 일하는 박재열(朴栽烈.36.인천시서구가정2동 경일아파트108호)씨는『갑자기 등이 차갑게 시려와 눈을 떠보니 방안이 온통 물바다였다』고 말했다.
그때가 오전7시쯤.차탄리일대는 아수라장이었다.
『아무런 안내방송이나 경고방송을 듣지 못했어요.어디로 대피해야 할지 몰랐어요.그저 높은 곳을 향해 본능적으로 움직였을뿐이었어요.』 朴씨는 5년전에도 물난리를 겪었던 경험을 살려 포클레인을 이용해 고립돼 있는 주민들을 찾아나섰다.
인근 연천카센터에는 20대 후반의 임신부가 물이 목까지 차오르자 빠져나오지 못한채『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또 마을 중앙 2층집에는 중풍으로 누워있던 60대 할아버지가애처롭게 비를 맞으며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천군신서면내산리 8백여명과 도신리 육군 모부대원 1백여명도건물 옥상에 올라가 발을 구르고 있었다.
이들은 악천후로 구조헬기가 뜨지 못해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공포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헬기와 119구조대가 나타난 것은 오전9시30분쯤.
『강물이 범람한지 2시간 후에야 구조대가 도착한 겁니다.』 朴씨는 『구조대원이 도착하는 것을 보고 고지대 군청까지 5백여m를 헤엄쳐 도착한 뒤에야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오후3시.폭우가 그치면서 물에 잠겼던 주택들이 흉물스런 모습을 드러냈다.고지대로 대피했던 일부 주민들이 집으로 돌아와가재도구를 정리했다.그러나 이들은 오후10시쯤 다시 대피소동을벌여야 했다.
한탄강 상류 철원군 지역에 내린 폭우로 철원군동송읍 동송저수지 제방이 붕괴되면서 1천5백만t가량의 물이 한탄강으로 흘러들어 강물이 불어나면서 저지대가 다시 침수됐기 때문이다.
바다로 변한 연천읍은 경원선 철도운행도 끊긴데다 전화도 불통상태.수마가 할퀴고 간 시가지는 임흑천지였다.
한국전력측이 감전사고를 막기 위해 27일 오후5시40분을 기해 연천군내 5개 읍.면 15개리 5천2백여가구에 전기공급을 중단했기 때문이었다.
1만8천여명의 이재민들은 연천군청과 연천중.대명중.친서면사무소.친서초등학교.천덕회관등에 분산 대피했다.청산면백의2리는 주민 4백여명이 오전9시쯤 배수펌프장마저 물에 잠기자 인근 초성리로 옮겨 마을회관등에서 불안한 밤을 지샜다.
흙탕물 바다를 바라보며 넋이 나간 주민들은 『천재인지 인재인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사전 대피방송이라도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당국의 안일한 수방대책을 원망했다.
전익진.김기찬.김원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