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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지리기행>28.우리풍수의 시조 道詵국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우리 풍수의 시조는 신라말의 선승(禪僧)도선국사(道詵國師)다.
도선풍수는 중국풍수 또는 술법풍수와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한마디로 말하자면 도선풍수에서는 좋은 땅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가 풍수를 시작한 것이 도선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다.또공부한 내용이 도선풍수인 것도 아니었다.그저 남들이 흔히 말하는 풍수를 좀 남다른 이유 때문에 시작하기는 했지만 부끄럽게도우리 풍수의 시조가 도선이란 것도 모르고 지냈었다.『청오경(靑烏經)』『금낭경(錦囊經)』『인자수지 (人子須知)』따위의 책들을풍수의 모든 것인 줄 알고 풍수학인입네 하며 지내온 사람이다.
그러다 도선을 알게 되었고 그를 알고부터 술법풍수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특히 대학을 사직하고 홀가분한 처지가 되고나서부터는 도선을 마음으로 받아들였달까,하여튼 풍수에 대한 지금까지의 생각들에 대해 큰 변화 를 겪게 되었다.그렇다고 해서 중국 풍수서에 나오는 이론들까지 단지 허망한 말장난으로 보아 무시했다는 것은 아니지만,중요한 것은 글보다 깨달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정도다.
그렇다면 도선풍수란 무엇인가.그것은 한마디로 땅에 대한 사랑이다.사랑은 홀로 되는 것이 아니다.거기에는 상대가 필요하다.
땅의 상대는 사람이다.사람과 땅의 관계 속에서만 사랑이 생겨날수 있다.그러므로 도선풍수에서는 땅 못지 않게 사람이 중요하다.사람을 모르고 땅을 볼 수는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또한 사랑은 훌륭한 것,좋은 것만을 상대하는 일이 아니다.
훌륭하고 좋은 것이라면 나 아니라도 사랑해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오히려 지고지선(至高至善)한 사랑이란 다른 것에 비해 떨어지는 것,문제가 있는 것,좋지 않은 것에 대해서일 때의미가 있다.도선풍수에서의 땅 사랑은 그런 근본적인 인식속에서출발한다.명당이니,승지니,발복의 길지니 하는 것은 도선풍수의 본질에서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개념들이다.
결함이 있는 땅에 대한 사랑이 바로 도선풍수가 가고자 하는 목표다.그것이 바로 비보(裨補)풍수이기도 하다.도선풍수는 땅을어머니와 일치시킨다.어머니인 땅이다.그 어머니의 품안이 우리의삶터가 된다.만약 어머니의 품안이 유정(有情) 하며 전혀 문제가 없는 자모(慈母)의 표본같은 경우라면 어느 자식이 효도를 마다할 것인가.그것은 효도도 아니고 당연한 되갚음의 의미밖에는안 될지도 모른다.
좋은 어머니는 그 자체로서 완벽 지향적이고 따라서 이상형이다.현실에 완벽이라든가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어떤 어머니라도 얼마만큼의 문제는 지니고 있는 법이다.피곤하실 수도 있고 병에걸리셨을 수도 있으며 화가 나 계실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어머니의 품안도 생각해야 한다.도선풍수는 바로 그런 완벽하지 못한 어머니,즉 병든 우리 국토를 사랑하자는 땅에 관한 지혜다.
어머니의 피곤을 풀어드리고,병을 고쳐드리고,기분을 온화하게 할 수 있는 방편을 찾아야 어머니에 대한 참된 사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좋은 어머니에게야 누가 좋게 대하지 못할 일이 있으랴.바로 그 고쳐드리고 풀어드리는 일이 도선풍수 의 비보책이다. 선이 창건한 절 또는 그와 연기(緣起)된 절을 답사하며 절실히 깨달은 것은 도선은 정말 어머니인 국토를 사랑했다는 것이었다.바로 곁에 좋은 땅을 두고도 도선은 그 터를 차지하지 않았다.도선이 풍수를 배운 구례 사도리(沙圖里)는 섬진 강의 공격사면에 해당되는 곳이라 물 피해가 항상 염려되는 땅이고,그가 35년간 머무른 광양의 옥룡사는 습지인지라 숯을 깔고 나서야 절을 세울 수 있는 땅이었다.즉 그는 문제 있는 땅을 선택해 거기에 절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요즘처 럼 결코 좋은 터찾아 그곳에 부모님 유해를 안장해 돌아가신 그 분들의 덕까지 좀 보자는 이기적 속신이 아닌 것이다.
도선 정도의 도안(道眼)이 몰라서 그랬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그는 사랑을 실천했던 것이다.이 국토의 온갖 병통(病痛)을 그의 풍수로써 고치고자 했다는 것을 현장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그 사찰들은 결코 명당들이 아니었다.오죽하면 도선과 연기된 사찰들은 거의 다 폐찰(廢刹)이 되었겠는가.오늘의 이기적 풍수는 엄밀히 말하자면 풍수가 아니다.돌아가신 부모님의 백골에서까지 무엇인가를 얻어내겠다는 마음가짐이 어찌 사랑일 수 있는가.그것은 이미 백 수십년 전에 실학 자들이 표현한 바 그대로나라와 겨레를 망칠 지점술(地占術)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도선풍수의 본질은 땅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며 그 방법론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고침(治療)의 추구다.오늘의 풍수가 마치 상대방이 좋은 조건을 가졌기 때문에 결혼한다는 지극히 비인간적인 젊은이들의 사고 방식이라면,도선풍수는 사랑하므 로 상대의 문제를 해결해 그와 조화를 이루겠다는 진정한 의미의 인간애의 실현 방법이라 하겠다.후대로 오면 올수록 풍수는 효(孝)사상과결부돼 개인의 복을 비는 관념과 결합,조상의 묏자리를 잡기 위한 음택풍수로 고착화하고 만다.그러니 그 폐단은 점점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고 결국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풍수로 인해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까지도 그런 걱정이 단지 걱정에 그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니 그것이 더욱 걱정이다.『근자에 모 정치인은 풍수가로부터 「후손중에 대통령이 난다」는 코치를 듣고 가족묘를 옮겨화제가 되었다고 하며,전직 대통령도 그 부인의 조상묘를 「여왕이 나는 자리」로 이장했던 덕택에 대권을 잡았다는등 요상한 얘기가 담긴 풍수책이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던 것도 얼마 전의일』이라는 기사가 모월간지에 실린 것을 읽었다.
***이 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실학자들의 걱정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효함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도무지 부모님 살아 생전에 받은 은혜만으로도 몸 둘 바를 몰라야 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인데 이제 이승을 떠나 백 골만 남은 부모님에게까지 음덕(陰德)을 바란데서야 그게 어디 사람의 자식이 할 짓인가.게다가 사회지도층 인사라할 사람들이 오늘의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매장묘지(埋藏墓地)문제를 덮어두고납골당이라든가 화장(火葬)같은 본보기적 장례문화 쪽으로 솔선수범하기는커녕 그런 구태(舊態)를 보였다면 정말 큰 일이다.다시한번 와전이기를 바라면서,그런 것은 결코 도선풍수가 될 수 없음을 이자리에서 자신있게 말하고자 한다.
〈풍수지리연구가.전 서울대교수〉 최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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