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기획] 겉 다르고 속 다른 자 척 보면 아는 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6면

인간은 누구나 겉보기와 다른 이면이 있으되, 이를 알아채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다. 주인공 번(류칭윈)은 이런 통찰력, 아니 초능력을 가진 전직 형사다.

예컨대 남들 눈에는 물건을 고르는 듯 보이는 한 소녀가, 그의 눈에는 도둑질을 부추기는 내면의 또 다른 자아까지 더해 2명의 인격으로 보인다. 이 같은 능력(이 영화의 한자 제목은 ‘신탐(神探)’이다) 덕분에 번은 과거 범죄수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일상을 보면 기행을 일삼는 미친 사람(이 영화의 영어제목은 ‘미친 형사’를 뜻한다)에 가깝다. 상사의 퇴임식에서 자신의 귀를 잘라 선물로 주는 엽기적 사건을 벌인 뒤 번은 경찰을 그만뒀다.

‘매드 디텍티브’는 이 희한한 캐릭터에 바탕한 이야기의 힘이 단연 매력적인 영화다. 인간이 지닌 다면성, 이를 꿰뚫어 보는 비범한 능력을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시각화하는데, 그 솜씨가 빼어나다.

번은 불쑥 찾아온 후배 형사 호(안즈제)의 요청으로, 미궁에 빠진 형사 실종사건의 수사에 나선다. 절도용의자를 쫓던 두 형사 중 한 명이 실종됐는데, 실종된 형사의 총이 다른 범죄에 사용된 사실이 드러난 상태다.

번이 의심하는 인물은 실종된 형사의 짝패였던 형사 치와이(린자둥)다. 놀랍게도 번의 눈에 보이는 치와이는 무려 7명의 서로 다른 인격을 지니고 있다. 7명의 배우가 군집을 이뤄 치와이의 내적 갈등을 보여주는 장면은 단순한 연극적 기법이면서도, 유려한 연출로 뛰어난 효과를 낸다.

문제는 치와이에게 뚜렷한 알리바이가 있다는 점이다. 번은 사건 관계자들의 숨은 인격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그만의 또 다른 수사기법으로 사건의 핵심에 다가가려 하지만, 이 역시 남 보기에는 미친 사람의 미친 짓거리에 가깝다.

메가폰을 잡은 두치펑은 기왕에도 홍콩 액션물을 예술영화의 경지로 만들어온 감독이다. 이번 영화에서 특히 탐나는 솜씨는 공동감독이기도 한 웨이자후이의 각본이다. 스릴러물로 복기하자면 빈틈이 없을 리는 없는데, 주연배우 류칭윈의 무심한 듯하면서도 인상적인 연기는 그 여백을 메우기에 충분하다.

최고의 장면을 꼽으라면 마지막의 총격전이다. 인간의 다면성을 상징하듯 거울과 거울로 분산된 공간에서 주요 인물들의 총구가 불을 뿜는다. 오슨 웰스의 ‘상하이에서 온 여인’(1947년 작)에 나오는 그 유명한 거울방 장면을 홍콩식 액션으로 변주한 듯한 짜릿함이 일품이다. 이 90분짜리 오락물이 덤으로 안겨주는 질문도 뒷맛이 강하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인간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능력은 과연 축복일까, 아닐까.

이후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