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 드라마 속 숨은 공로자인 대역 연기자들을 만났습니다. 주목받는 젊은 음악가, 일본요리의 달인, 무술 고수 등 다들 그 분야에서 한가락씩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5년간 히트가요의 샘플곡만 부르다 당당히 가수로 데뷔한 이도 있습니다. 누구는 자신의 전문분야를 알리고 싶어, 누구는 그저 일이 즐거워 작품에 참여했답니다. ‘대역 인생’의 고충을 들었습니다. ‘대역’ 아닌 ‘주인공’으로 사는 그들의 삶도 엿봤습니다.
글=이영희·이도은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영화·드라마 ‘식객’의 그 손 - 요리사 이경우
학 모양 황복요리 제 손 거쳤죠
서울 연신내에 있는 일본 요리 및 회전초밥 전문점 ‘스시쿠니(壽司國)’의 이경우(43) 조리장. 서울 강남의 한 복집에서 조리부장으로 일하던 2006년 영화 ‘식객’ 측의 제안을 받았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황복회를 뜰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복어회란 게 손질도 까다롭지만 0.2~0.3mm 두께로 아주 얇게, 또 끝부분이 살짝 살아나도록 각을 세워 떠야 하기 때문에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거든요.” 세종호텔 일식당을 거쳐 서울 유명 복집들의 조리장으로 일하면서 복어에 한해서만은 국내 최고 실력으로 꼽히던 그였다. “처음엔 주방에 있어야 할 요리사가 카메라 앞에 나선다는 게 꺼려졌어요. 하지만 원작 만화의 팬이었던 데다 한국 최초로 만들어지는 요리 영화에 작으나마 기여하고 싶었습니다.”
영화 ‘식객’ 초반부에 등장하는 국화 모양과 학 모양의 화려한 황복회가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2시간짜리 영화에 비해 24부작이었던 드라마에서는 작업이 훨씬 많았다. 드라마 초반 민우(원기준)가 선보이는 황복회 요리는 물론, 대령숙수(최불암)가 민어·생태를 손질하는 장면 등에 손 대역으로 출연했다. “대역을 쓰는 모든 요리 장면은 두 번 찍는 거라 보면 됩니다. 일단 제가 요리하는 과정을 하나하나 촬영하고, 배우들이 제가 했던 순서를 그대로 따라 다시 음식을 만드는 식이에요.” 드라마 속의 능숙한 요리 장면은 두 가지 촬영분이 속도감 있게 편집된 결과다.
촬영을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느라 몸도 고됐지만 더 힘들었던 건 만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요리’를 눈에 보이는 ‘진짜 요리’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민어부레 요리 경합 장면을 촬영하던 1월에는 한여름이 제철인 민어를 구하기 위해 전국 수산시장을 헤맸다. 성찬(김래원)이 그릇을 깨뜨려 두부로 그릇을 만드는 장면에선 두부 그릇이 자꾸 부서지는 바람에 수십 번 NG가 났다. “요리를 하다 보면 자신이 하던 방식만을 고집하는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지게 돼요. ‘식객’에 참여하면서 요리가 정말 창조적인 작업이라는 걸 다시 깨닫게 됐습니다. 25년 경력의 제 요리에도 새로운 자극이 된 셈이죠.”
박건형·최수종·이준기의 액션 - 액션 연기자 권혁석
주인공의 걸음걸이까지 익혀요
‘몽돌액션’ 소속 연기자 권혁석(27)씨는 요즘 KBS ‘바람의 나라’에 도진(박건형)의 액션 대역으로 출연 중이다. 2005년 액션 연기를 시작해 KBS ‘해신’의 장보고(최수종) 대역, SBS ‘일지매’의 일지매(이준기) 대역 등을 거쳤다. 다양한 액션 연기 중에서도 주인공의 대역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액션 실력은 기본이고, 일단 배우와 체격 조건이 비슷해야 해요. 제 키가 1m78㎝인데, 여러 남자 배우를 커버하기에 좋은 조건이죠.” 일단 대역이 결정되면 자신이 연기하는 배우의 행동을 찬찬히 관찰하고 작은 몸짓, 걸음걸이까지 몸에 익힌다. 시청자들의 눈에 어색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액션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일반 배우들이 주로 대사나 표정을 이용해 연기한다면, 액션 배우들은 몸으로 연기하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연기력이 필요하다. “목숨을 바쳐 누군가를 지키는 장면에선 처절한 몸짓을 연기해야 하고, 영웅의 역할을 할 땐 주변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풍겨야 하죠.” 일지매 역할을 할 땐 지붕을 폴짝폴짝 날아다니는 날렵한 몸놀림이 중요했다. ‘바람의 나라’에서는 냉철한 무사 역할인 만큼 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파워풀한 액션을 연습하고 있다.
위험한 순간도 많다. KBS 대하사극 ‘대조영’에서 말을 타고 질주하는 장면을 찍을 때였다. 올라탄 말의 안장이 풀어져 있는 걸 미처 체크하지 못했다. 단체로 커브를 도는 장면에서 몸이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말에서 떨어지면서 투구가 바위에 부딪쳐 깨졌어요. 정신을 잃으면서도 ‘뒷말에 밟히면 죽는다’는 생각에 아찔하더라고요.”
항상 죽음을 의식해야 하는 일이지만 오랜 꿈이었기에 불만은 없다. “어릴 적 ‘모래시계’를 보면서도 때리는 주인공보다 테이블 위로 몸을 던지며 멋지게 쓰러지는 상대 액션 배우가 더 멋있었는 걸요.” 이목구비 뚜렷한 외모 덕에 “액션만 하지 말고 제대로 연기를 배워보라”는 제안도 종종 듣는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다르다. “외국에는 리샤오룽(李小龍), 리롄제(李連杰) 등 멋진 액션으로 스타가 된 배우가 많잖아요. 저도 액션으로 한 인물을 제대로 표현해 내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이지아의 연주 - 바이올리니스트 송원진
소름 돋는 감동 연주 드리고 싶죠
송씨는 러시아 국립 차이콥스키 음악원을 졸업한 뒤 귀국해 활동하고 있는 전문 연주가다. 현재 광주대에 출강 중이고 지난해엔 ‘주목할 예술가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보이지 않는 공연’에 참여하는 이유는 뭘까. “많은 사람이 클래식을 접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응했어요. 드라마에 나오는 내 연주를 듣고 가슴 떨리고 소름 돋는 감동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죠.” 외국에서는 이미 거장들의 연주 대역이 일반화됐다. 영화 ‘레드 바이올린’ ‘라벤다의 연인들’에선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미리 연습한 곡이 많은 베테랑이 아니라면 힘들었을 거예요. 녹음할 곡이 이틀 전 정해지기도 하거든요. 무대에 서는 것만큼 만만치 않아요.”
드라마에선 1분도 채 안 나오는 연주도 실제 녹음은 4~5시간이 걸린다. 부분으로 쓰이는 곡도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녹음한다. 완벽한 연주는 없기 때문에 항상 부족한 느낌이다. 2회에 남자 주인공과 듀엣으로 연주한 ‘베토벤 심포니 9번’은 공을 가장 많이 들였다. 하루 종일 작업하고도 음악감독의 OK 사인이 떨어지지 않아 다음날 다시 작업했다. 회식 장면에서 나온 ‘빈대떡 신사’는 상상력이 필요했다. 처음 해보는 가요 연주라 어렵기도 했지만 배우의 캐릭터에 맞게 여러 개 버전을 만들어야 했다.
촬영을 끝내고 재녹음에 들어가기도 한다. 배우의 손가락 움직임이나 활의 위치가 녹음한 소리와 다를 때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다. 누가 알아챌까 싶지만 ‘요즘은 네티즌 무서워서’ 당연하단다. 말이 나온 김에 ‘어설픈 연기를 꼬집는 시청자가 꽤 있다’고 하니 여유 있는 답이 돌아왔다. “의사가 드라마 수술 장면을 보면서 만족스럽지 못한 것과 같아요. 하지만 배우가 짧은 시간 연습해서 그 정도라면 괜찮은 거 아닐까요.”
히트곡 가이드 보컬 - 가수 나비
제 노래 녹음할 때 눈물이 나데요
가수 나비(24)는 데뷔 전 5년 동안 ‘대역 아닌 대역’이었다. 누구도 불러본 적이 없는 노래들을 가장 먼저 부르고 떠나 보냈다. 제작사나 가수가 앨범 수록곡을 정하기 위해 미리 듣는 ‘샘플’을 만드는 게 그의 일이었다. 한재호·박기완 등 4~5명의 작곡가 밑에서 한 주에 보통 3~4곡씩 녹음했다.
아무리 샘플이지만 작곡가들의 요구사항은 까다로웠다. 한 곡을 녹음하는 데 4~5시간은 필요했다. 목소리는 실제 곡을 부를 가수에 맞췄다. 보아의 곡은 힘 있게, 빅마마의 노래는 R&B의 색깔을 잔뜩 입혀 소화했다. 완성된 곡은 편곡도 되고 음정도 조금씩 바뀌지만 몇년이 지나도 ‘내가 불렀지’하고 기억이 난다. god·SS501·소녀시대 등의 노래가 그를 거쳐갔다.
“노래가 방송을 타거나 히트까지 할 땐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주인공같이 슬펐어요. 나도 빨리 데뷔해서 내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죠.” 녹음한 파일을 죄다 보관해 두고도 듣지 않았다. 어차피 내 노래가 아닌데 싶어서다. 가이드 보컬의 기교를 그대로 따라 부른 가수를 보기도 했다. 악보를 못 보는 신인 중엔 가이드 보컬의 노래로 멜로디를 익히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가창력이 모자라 ‘차라리 내가 낫다’고 생각한 가수도 있었다.
7년 전 가수의 꿈을 안고 전라도 광주에서 서울로 왔다. 그땐 이런 긴 터널이 있을 줄 몰랐다. 상경하자마자 200만원만 내면 데뷔시켜 주겠다는 말에 속아 사기를 당했다. 그 무렵 작곡가를 소개받았다. 여자 가이드 보컬이 필요하다고 했다. 무보수였지만 그게 다 노래 연습이려니 해서 불만은 없었다. 대신 아르바이트를 했다. 동대문시장에서 옷을 팔고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했다. 이미 데뷔가 늦었다는 말을 수차례 들었다. 그래도 해보고 싶었다. 어느 날 기획사 사람이 찾아왔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생각했던 이미지가 아니라고 했다. “외모가 경쟁력이 안 됐어요. 당시 신인 여자 가수라면 SES나 핑클처럼 요정이어야 했으니까요.”
2년 전 또 한 번 상처를 받았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획사 사람이 대뜸 “왜 수술 안 하느냐” “그렇게 할 거면 일찌감치 포기하라”고 했다. 정말 관둬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지금의 제작자를 만났다. 2년간 준비기간을 거쳐 올해 힙합 그룹 ‘홀라당’의 멤버가 됐다.
“그간 수백 곡을 불렀는데 막상 제 노래를 녹음할 때 처음 울었어요. 가이드 보컬로 보낸 시간이 헛되진 않아요. 이젠 랩도 댄스곡도 자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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