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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차’ 이젠 뭐라고 부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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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촘촘한 철망으로 둘러싸인 외양 탓에 ‘닭장차’라는 오명을 얻었던 경찰 버스가 근 30년 만에 사라지게 됐다.

경찰청은 17일 “기존의 철망 대신 강화플라스틱 보호창을 갖춘 경찰 버스 석 대를 두 달간 시범 운영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연말 전국 각 지방청으로 확대한 뒤 내년부터 구입하는 모든 버스에 도입을 추진키로 했다.

◆“닭장 속 닭 취급당해”=경찰청은 이날 오전 서울 미근동 청사 주차장에서 ‘철망 없는 경찰 버스’를 선보였다.

철망을 대체하는 보호창은 폴리카보네이트(PC) 소재다. 충격에 강하고 불에 타지 않아 전·의경 방패와 방석모의 안면 보호대 등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강도는 유리에 비해 250배, 아크릴에 비해 30배 이상 강하다.

지난 6월 촛불시위대에 의해 철망과 차문이 뜯겨진 전경 버스(사진(上)). 경찰은 ‘닭장차’로 불렸던 경찰 버스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시위대의 공격으로부터 차량도 보호하기 위해 철망 대신 폴리카보네이트(PC) 창문을 유리창 위에 부착할 계획이다. 17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린 시연회에서 한 경찰관이 PC 창문을 부착한 경찰 버스를 쇠파이프로 타격해 보이고 있다(사진(下)). [박종근 기자]


김교태 경찰청 장비과장은 “실험 결과 돌멩이는 물론 쇠파이프나 망치로 쳐도 흠집만 날 뿐 안전했다”고 밝혔다. 설치 비용은 한 대당 350만원. 기존 철망에 비해 약 100만원 정도 더 든다.

철망을 없앤 가장 큰 이유는 ‘닭장차’로 상징되는 전·의경의 대국민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것이다. “닭장차라는 비하적 표현 탓에 공권력 집행자인 경찰과 전·의경이 ‘닭’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경찰 내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대형 집회 때마다 장시간 버스에 머무는 전·의경의 처지도 고려됐다. 장전배 경찰청 경비과장은 “촘촘한 철망에 시야가 좁아져 장시간 머무는 대원들이 답답함에 스트레스를 호소한다”고 전했다. 철망 사이로 대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행인에게 그대로 노출되는 점도 문제였다. 경찰은 철망을 제거한 버스 측면 유리창에 틴팅을 해 내부가 들여다보이지 않게 할 계획이다.

◆백골단과 함께 1980년대 상징=닭장차가 널리 보급된 것은 80년대 초반이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늘면서 진압 경찰의 안전을 위해 전경 버스 유리창에 철망을 쳤다. 당시 대학가와 시내 도로에 줄지어 늘어선 닭장차는 최루탄·‘백골단(사복체포조)’과 함께 권위주의 정권의 상징이었다. 집회 현장에서 체포된 재야 인사·대학생·시민은 예외 없이 닭장차에 실려 경찰서로 향해야 했다.

87년 6월 10일 시위에 참가한 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 역시 동료 국회의원들과 ‘닭장차’ 신세를 졌다. 외부와 차단된 폐쇄된 공간이라 경찰이 연행 중인 시위대를 폭행하는 일도 잦았다. 87년 6월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 닭장차에 실려갔던 정모(43·회사원)씨는 “차에 타자마자 전경들의 발길질이 시작돼 경찰서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민주화 이후 경찰은 이미지 개선을 위해 수차례 철망 제거를 시도했으나 무산됐다. 98년 시위 감소를 이유로 파출소와 기동대 차량의 철망을 한때 제거하기도 했다. 철망을 없앤 경찰 버스가 대학가 통학과 귀성객 수송에 제공되기도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가두 시위가 이어지면서 다시 철망이 복원됐다.

오히려 닭장차가 시위대를 막는 ‘차벽’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2002년 효순·미선양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촛불집회가 계기였다. 시위대와 전·의경 간의 직접 충돌은 다소 줄었으나 버스 파괴가 크게 늘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5월 이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로 훼손된 버스는 173대에 이른다.

천인성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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