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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올림픽 레슬링 심권호 금메달 따던 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결승전을 벌이기 1시간전.
심권호(沈權虎)는 평소 즐겨듣던 김건모의 노래 『스피드』를 듣기위해 이어폰을 꽂았으나 귓가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파블로프와 맞붙는 온갖 상황이 머리를 어지럽혔다.갑자기 어머니의 걱정스런 얼굴도 떠올랐다.
경기장은 경기 시작 30분전부터 술렁거렸다.사격에서 첫 메달을 놓친 한국팀단장과 체육회 간부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이건희(李健熙)대한레슬링협회장겸 신임IOC위원과 김운용(金雲龍)IOC부위원장겸 대한체육회장도 한국의 첫 메달을 기원 하며 본부석을 찾았다.
매트위에 선 심권호는 『절대로 울면서 매트를 내려 가지는 않겠다』고 다짐하며 파블로프를 쏘아 보았다.상대도 금메달을 의식한 탓인지 약간 긴장한 모습.순간 초반에 파블로프가 서두를 것같다는 예감이 沈의 머리를 스쳤다.
경기개시 종이 울리자마자 파블로프는 자신의 주특기인 들어메치기를 시도하기 시작,한때 沈은 두발이 들리는 위기를 맞았다.그러나 안간힘으로 버틴후 강력한 가슴파기로 반격했다.
15초간 두 선수의 공격이 소강상태를 맞자 주심은 두 선수중소극적이었던 파블로프에게 파테르를 선언했다.스탠드자세에서는 버티고 그라운드(누워서)에서 승부를 내자는 코칭스태프의 주문대로沈은 옆굴리기를 시도했으나 실패,다시 피마르는 접전이 이어졌다. 5분간의 경기중 53초를 남겼을 무렵 沈에게 다시한번의 파테르 찬스가 왔다.순간 沈은 목감아 돌리기를 시도하는척하다 기습적으로 옆굴리기를 성공시켜 2점을 따냈다.
지난날 김영남(金永南)코치가 서울올림픽에서 써먹어 금메달을 따냈던 위장전술을 거꾸로 쓴 것.파블로프의 몸을 타고 옆으로 구르면서 沈은 이길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패배를 예감한 파블로프는 억센 반격을 펼쳐왔다.
5분간의 규정시간은 종료됐으나 기술점 3점이상을 기록해야 승리가 결정되는 규정에 따라 경기는 연장으로 이어졌다.이른바 서든데스게임.먼저 3점을 얻으면 이긴다.파블로프는 큰기술로 3점을 얻어야하고 沈은 1점만 더하면 되는 상황.힘은 떨어지고 악만 받쳐 올랐다.
이를 악문 沈의 기세에 눌린 파블로프는 뒷걸음을 계속하다 연장1분16초쯤 파테르를 선언당했다.沈에게 마지막 기회가 온 것. 『어머니!』 온 힘을 다해 외친 권호의 목소리가 관중들의 함성에 묻히면서 파블로프의 몸통은 속절없이 3백60도 회전했다.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관중석에서 숨을 죽이던 신박제 단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만세!』,금메달소식을 기다리던 신단장의 두눈엔 어느덧 눈물이 방울져 떨어지고 있었다.
애틀랜타=권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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