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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紀末의 이면 꼬집은 "유나바머""아무것도..."책 출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풍요로운 물질과 첨단과학의 현대문명은 과연 인류에게 행복을 약속하는가.일면 진부한 이 질문에 최근 출간된 『유나바머』(박영률출판사刊)와 『아무 것도 되는 게 없어』(황금가지刊)는 『아니오』라고 잘라 말한다.궁지에 몰린 세기말의 이 면을 들춰낸이 책들은 현대 사회가 깊은 병에 빠져들었다고 꼬집고 있다.탈출구가 꽉 막힌 방속에 갇힌 것처럼 현대문명은 방향타를 상실했다는 시각이다.주제는 심각하나 일반인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있는 대중서들이다.
『유나바머』는 지난 18년간 미국에서 16번에 걸쳐 대학과 항공사에 폭탄을 우송한 테러범에 관한 자료를 모은 책.FBI에서 용의자로 지칭한 유나바머(Unabomber)는 대학(university)과 항공사(airline)의 앞글자 에 폭파범을합친 말이다.
본명은 시어도어 카진스키.하버드대를 졸업하고 24세에 버클리대에서 종신교수권을 따낸 수학천재였다.전례없는 수사비를 비웃듯친동생의 제보로 지난 4월 구속될 때까지 베일속에 가려졌었다.
그는 오두막집에 칩거하며 쥐도 새도 모르게 폭탄테러를 자행했다.현대기술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박탈하고 자연을 파괴하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는 길은 혁명뿐이라는 생각에서다.지난해 9월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를 협박해 실은 「산업사회와 그 미래」라는 선언문은 그의 면모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산업사회에 항거하는 혁명을 주장한다.혁명의 목표는 정부가 아니라 현존사회의 경제,테크놀로지의 토대를 제거하는 것이다.』 악마적 천재를 주목하는 까닭은 그가 단순한 미치광이가아니었다는 사실 때문.특히 정보화사회의 리더격인 인터네트가 쏟아붓는 엄청난 자료에 매몰돼 자유를 잃은 현대인들을 개탄한다.
과학의 맹신이 부를 인간성 상실을 경고하는 것이다.테러라는 극단적 대응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브레이크 없는 벤츠」처럼 질주하는 과학문명의 그늘을 되돌아보게 한다.인터네트를 거부한 그에 대한 정보를 출판사가 인터네트로 받아 번역. 출간했다는 점이 역설적이다.
심리학박사 김일균씨는 『우리 사회는 미국보다 변화속도가 빠른만큼 시행착오도 많다』며 유나바머 현상이 강건너 불이 아님을 짚기도 했다.
한편 『작은 인간』『식인과 제왕』 등으로 친숙한 미국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아무 것도 되는게 없어』는 사회학.경제학.
여성학.통계학등 폭넓은 학문성과를 동원하며 현대문명의 뒤안을 조모조목 섬뜩할 정도로 파헤친다.거리를 난무하는 총격전,낙서로뒤덮인 건물,위축되는 달러화등 주로 70~80년대 미국사회의 풍속도를 그렸다.그러나 90년대 한국사회와 유사점도 많아 시사성이 크다.
급증하는 섹스숍,확산되는 동성연애자,상승하는 이혼율,점성술의인기상승,거칠기 짝이 없는 점원,흉포해지는 범죄,소수 종교집단의 기승등은 마치 우리의 신문 사회면을 읽는 듯하다.더욱이 볼트가 부러지며 폭삭 주저앉은 시민회관,구름다리 붕괴로 1백11명의 사망자를 낸 호텔은 우리 사회의 성수대교.삼풍백화점의 악몽을 기억하게도 한다.
저자는 이처럼 미국의 병리적 징후를 제조업의 쇠퇴,서비스 산업의 부상,여성의 사회진출,컬트의 범람등 크게 예닐곱 가지로 나눠 조망한다.
아쉽다면 두책 모두 부정적 현상을 헤쳐나갈 대안 제시에 미흡한 점.반면 현대의 문명적 좌표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출발점이되고 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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