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유머는 없고 匕首만 있는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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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권위주의와 민주주의의 싸움은 웃을 줄 모르는 사람들과 웃을줄 아는 사람들의 싸움」이라는 말이 있다.여기에서 연역해 보면걸핏하면 화내고 싸우기만 하지 웃을 줄도,웃길 줄도 모르는 우리 정치는 권위주의 정치이지 민주주의 정치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선인장과 의회의 차이는 그 가시가 하나는 밖으로 노출돼 있으나 다른 하나는 속에 감춰져 있는것」이라는 말도 있다.
대립과 갈등은 정치의 본질적 속성이다.여야가 다투는게 이상스러울 것은 없다.그러나 가시를 온통 밖으로 드러내며 싸우기만 하니 문제인 것이다.가시는 지니되 그것을 웃음으로 싸 마치 가시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데 민주정치의 생 명과 묘미가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 정치인들이 가장 신경쓰는 것이 연설이나 발언의준비다.처칠같은 명연설가도 연설문을 대여섯번씩 고쳐 썼다고 한다.미국의 경우 대통령이나 대통령후보는 연설원고 작성자를 여러명 거느리는건 물론 그 가운데는 유머나 위트에 재능이 있는 전문가를 포함시킨다.유머나 위트가 그 어떤 웅변보다 효과적이라는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레이건대통령이 민주당의 먼데일후보와 TV토론을 벌였을 때의 일이다.패널리스트로 나온 한 기자가 마침내 레이건의 최대 약점이라 할 수 있는 고령(高齡)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이번에야말로 궁지에 몰리는가 했는데 레이건은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받아 넘겼다.『나는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문제삼지는 않겠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상대방이 너무 젊다든가 경험이 없다는 것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지는 않을 작정입니다.』 스튜디오의 방청석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그리고 이 재치있는 답변이 TV토론은물론 선거까지 판가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정치에서 멋진 말의 힘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자신의 약점인 고령을 오히려 장점으로 치장하고 상대의 장점을 약 점으로 슬쩍 바꿔 놓는 그 능청스런 화술에 정적인 먼데일도 함께 웃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도 상대를 몰아도 이런 식으로 한다면 보기에도 얼마나 재미있을까.웃기면 공격받는 상대의 가드가 내려가게 마련이다.그러면 급소 가격도 그만큼 쉬울 것이다.이제는 우리 정치도 이런 기술을 개발하고 도입해 정치싸움의 수준을 한차원 높여야 한다.
지금 여야는 서로 상대방이 지나친 발언을 했다며 흥분하고 있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 내용상으로는 양쪽 모두 별로 그릇된 말을 한 것 같지 않다.이신범(李信範)의원의 발언내용에 공감하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그런가 하면 유재건(柳在乾).한화갑(韓和甲).박철언(朴哲彦)의원의 발언에 대해서도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일반 국민으로선 정치권이왜 그렇게 토라지고 화를 내는지 영문을 모를 지경이다.이 또한정치9단들의 고도의 책략인가.
문제점을 굳이 찾자면 말썽이 된 발언들이 너무 직설적이고,거칠고,웅변적이기만 하지 정적(政敵)마저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화장술.포장술을 발견할 수 없었던 점일 것이다.이는 아직도 우리 정치가 사생결단의 정치나 제로섬 게임이지 더불 어 사는 정치,화합하는 정치가 되지 못하고 있는 구체적 증거다.
정치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최소한 정치의 형식만이라도 달리 해야 한다.정치발언에 유머와 위트를 섞는 것을 관행으로 하는 한편 품위를 잃은 표현에 대해서는 윤리적 제재를 가하게 하는 것이 그 한가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가령 영 국의 경우 의회에서는 「거짓말쟁이」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게 하고 있다.그래서 「정직성의 부족」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거짓말쟁이라는 뻔하고 쉬운 말을 두고서도 「정직성의 부족」과 같은 억지 말을 쓰는 데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영국사람들은 「유머는 의회의 방부제」라고 한다.이는 뒤집으면유머없는 의회는 썩는다는 말도 된다.아닌게 아니라 유머나 위트는 없이 욕설과 몸싸움만 난무하는 우리 국회는 썩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우리 정치는 너무 엄숙하고 격정적이며 투쟁적이면서 어눌하기만하다.이제는 정치도 좀 재미있어져야 한다.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게 불구경.싸움구경이라는데 여야의 싸움만큼 재미없는 싸움도 없다.자신에게 유머감각이 없다면 전속 유머작가라 도 고용해 재미있는 정치,재미있는 싸움을 국민에게 보여줄 책임이 정치인에게는 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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