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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공대 비극’ 노래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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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내게 주었던 아픔들로/서툰 이별로 끝을 맺은/내 삶을 기억해 줘/영원히…”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조승희를 모티브로 한 노래가 나왔다. 신인 모던록 밴드 ‘지와이(ZY·사진)’의 첫 앨범 ‘메모리즈’에 수록된 ‘구름 위를 걷다’라는 곡이다. 밴드는 충격적인 사건에서 소재를 따오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갔다. 곡을 만든 리더 김재용(31·보컬)이 조승희의 입장이 돼서 가사와 곡을 쓴 것이다.

“그를 동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가 비극적인 선택을 했을까, 다른 시각에서 사건을 보고 싶었죠. 사건을 비극적 결말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서툰 이별’이라는 가사는 세상과 함께할 수 없다고 판단한 조승희가 세상에 자신을 각인시키는 방법으로 비극적인 선택을 한 것을 표현한 것이다. 엔딩 부분의 가야금 속주는 총기 난사를 상징한다.

“노이즈 마케팅 차원에서 노래를 만든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가 소외받은 이들을 감싸안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습니다.”

노래는 논란이 될 수는 있어도, 마케팅 수단이라는 오해를 받을 것 같지는 않다. 앨범의 탄탄한 완성도 덕분이다.

‘비애감 넘치는 발라드가 앨범 전체적으로 유려하게 흐른다’(음악 평론가 임진모), ‘발라드적인 감성의 새로운 모던록 밴드’(윤도현) 등 음악계의 평처럼 밴드는 균형잡힌 사운드 위에 서정성 짙은 감성을 펼쳐 놓는다.

밴드가 추구하고 있는 브릿 록(영국 록)의 정서가 물씬 풍긴다.

박민호(37·드럼)·김영욱(28·기타)·방신학(22·키보드)·우석제(21·베이스)의 연주에 더해진 민혜인(27)의 가야금 연주는 슬픈 감성을 극대화한다. ‘그 곳에’는 갓 결혼한 남편이 베트남 전에서 전사한 충격 때문에 정신을 놓은 채 결혼 사진만 바라보며 사는 할머니의 실화를 소재로 했다.

“할머니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모티브를 얻었죠. 가야금 연주는 할머니의 슬픔을, 기타 속주는 남편을 앗아간 전쟁터를 상징합니다. ‘나를 제발 잊어줘’라는 가사는 혼령이 된 남편의 절규입니다.”(김재용)

타이틀곡 ‘널 지울게’는 내면을 파고 드는 감성적인 기타 연주가 인상적인 곡이다. 세계적인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를 떠오르게 한다. 이들이 지향하는 바도 ‘한국의 콜드플레이’다.

“오디션도 거치지 않은 멤버들이 한 데 뭉친 것은 진실한 감성을 연주하자는 공감대 때문이었습니다. 메마르지 않은 촉촉한 음악, 기교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음악을 할 겁니다.”(박민호)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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