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동 교수의 '세계 경제의 핵 화교' ①] 막강한 경제·잠재력…그들만의 네트워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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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 닿는 곳에 화교(華僑)가 있다’
‘화상(華商)의 상권에는 해가 지지 않는다’
‘화상은 유대인 못지 않은 상술과 기질을 가지고 있다’
모두 화교의 숫자와 경제력, 그리고 강력한 잠재력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화교 배출국인 중국을 정작 이웃으로 둔 한국이 화교에 보이는 관심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화교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이길래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얼마전 성황리에 막을 내린 베이징 올림픽을 생각해 보자. 박태환 선수가 금메달을 딴 수영 경기장인 베이징 올림픽 국립 수상경기센터. 일명 수이리팡(水立方)이라고 불린 이 곳은 화교들의 모금을 통해 만들어진 시설이다. 100여 개 국가의 화교와 홍콩, 마카오, 대만 동포 등 무려 35만 명의 자발적인 모금을 기반으로 건립된 것이다.


▲베이징 국립 수상경기센터 수이리팡. 화교들의 모금을 통해 만들어진 건물이다.[중앙포토]

그 뿐만이 아니다. 올림픽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데 세계 각국에 퍼진 2만7000여 명의 화교로부터 인터넷 신청이 몰려 들었다. 이들 중 경쟁을 뚫은 300여 명의 화교들이 현장 통역과 안내 등을 맡아 맹활약을 펼치며 올림픽의 원만한 진행을 도왔다. 화교들은 또 세계 각지에서 진행된 성화 봉송 과정에서 반(反)중국 시위를 온몸으로 막아내며, 인터넷을 통해 민족주의 정서를 확산시키는 동포애를 발휘하기도 했다.

베이징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었던 데는 이처럼 화교들의 숨은 공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화교들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첫 번째로 생각해 볼 건 그들의 규모다. 화교는 전세계 168개국에 걸쳐 8700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인구가 세계 각국에 퍼져 살고 있다는 소리다. 국가 하나를 이룰 규모의 이 화교들은 그저 널리 산재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연(地緣), 혈연(血緣), 업연(業緣)등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통해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

두 번째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그들의 경제력이다. 동남아에서 화교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동남아시아에서 화교의 인구비는 6%에 불과하지만, 각 국의 실질경제 성장 기여도는 70% 이상으로 추정된다. 2003년 세계은행의 자료에 의하면 화교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화권과 동남아권, 즉 범중화권의 GDP는 2조5800억달러로, 북미(NAFTA), 유럽연합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규모다. 화교 자본이 가지는 힘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다.

규모와 경제력 외에 놓쳐선 안 되는 화교의 또다른 저력은 바로 그들의 기질이다. 세계 각 국에 걸쳐 어마어마한 규모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화교들은 저절로, 혹은 누군가의 도움에 의해 성장한 것이 아니다. 바로 그들 스스로 세계로 나아가 새로운 땅에서 적응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그들의 기질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역사, 정치 등의 여러가지 이유로 지금까지 한국은 화교에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정착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2005년 화교 네트워크의 대표적 모임인 세계화상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됐다. 이제 한국경제도 화교의 중요성에 눈을 뜨고 손을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손자는 그의 병법서에서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 했다. 그만큼 상대방을 아는 일은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화교를 알고 이해해야만이 무한경쟁 사회인 이 시대에서 뒤처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중국 밖의 또 다른 중국인, 화교(華僑)는 누구인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유명한 시 ‘꽃’의 한 구절이다. 이와 같이 상대방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이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화교를 알기 위해서는 화교라는 말을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화교를 부르는 말에는 주로 세 가지가 있다. 화교(華僑), 화인(華人), 화상(華商)이 바로 그것이다.

화교(華僑)를 글자 그대로 풀어내면 ‘타국에서 임시거주하고 있는 중국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중국화교사무위원회(中國華僑事務委員會)는 1952년 “화교는 우리나라 인민 중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을 소지한 해외거주자”라고 했으며, 또 1957년에는 “국외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공민은 모두 화교”라고 하여 그 정의를 명확하게 하고 있다.

화교가 현지 국적을 취득하거나, 화교들의 2, 3세들이 현지의 국적을 취득하게 된 경우, 그들을 화인(華人)이라고 불러 화교와 구분하여 부르는 것이 공식적인 견해이다. 현재는 중국 국적의 화교보다 현지 국적을 가지고 있는 화인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화인들은 중국 정부에 대한 충성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인의 피를 이은 그들은 여전히 스스로 중국인의 후손임을 잊지 않고 있으며 화교와 특별한 경계를 두지 않고 있다. 이때문에 보통 화교와 화인을 혼용하여 사용한다.

화상(華商)은 화교 혹은 화인 기업가를 지칭하는 말이다. 옛 노래 가사에 ‘비단 장수 왕서방’이 등장하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중국인과 상인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이미지다. 실제로 화교의 대부분은 주로 상업에 종사했고, 많은 화교들이 기업가로서 성공했다. 화교가 중요시 되는 이유는 화상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교들은 세계각지로 뻗어나가 현지에서 각각 그들 특유의 상술을 구사하며 성장했을 뿐 만 아니라 그들 간의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화교자본을 구축한 장본인이다. 국제 금융계에서는 이러한 화상들의 자본을 가리켜 ‘국경을 모르는 세계 3위의 경제 세력’, ‘세계 제2위의 민족상권’이라고 한다.

화교, 화인, 화상. 이 세 단어에는 모두 중국을 의미하는 화(華)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중국이라는 공통적인 구심점을 가지고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고 있다. 왜 한 부류의 사람들을 다양한 말들로 부를까? 그것은 그 사람들이 그만큼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되지 않을까?

글=박정동 인천대학교 중국학연구소 소장 (www.uic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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