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몸도 편하고 오염물질도 줄이고 기름 값도 안 들고… 일석삼조 전기자전거

중앙일보

입력

일본 영화 <데스노트 l: 새로운 시작>의 한 장면. 영화 속 주인공인 중학생 소녀와 5살 남짓한 소년 L이이 외부에서 침입한 세력으로부터 도망치는 중이다. 소녀와 소년은 일분일초가 아까운 와중에 지하철을 타기 어려운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아,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갈까. 이 장면을 눈여겨 본 관객들이라면 그 답이 바로 ‘자전거’라는 것을 금방 떠올릴 것이다.
이런 영화적 상상력이 가능한 것은 일본적인 상황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은 철도와 자전거 문화가 발달한 나라다. 대부분의 철도역은 한 지역의 거점으로 기능하며, 자전거 환승 또한 자유롭다. 그런데 또 하나, 자전거도 보통 자전거가 아니다. 일본에서는 전기자전거 또한 낯설지 않다. 전통적으로는 노년층 수요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젊은층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전기자전거는 연료를 사용하는 오토바이와 달리 충전식 배터리로 움직인다. 일반자전거보다 힘이 덜 들기 때문에 출퇴근용으로도 적합하고 노년층의 교통수단으로도 매우 훌륭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전기자전거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주인공은 중앙대학교 기계공학부 오세훈 교수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008년형 전기자전거 ‘미니로’

자전거 한 그릇 4천원, 환경정화비용은 1만 원
오세훈 교수는 처음 전기자전거를 개발하게 된 이유가 다소 개인적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중앙대는 유난히 언덕이 많은 학교다. 정문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후문까지 걸어 올라가는 것도 꽤 힘이 든다. 그래서 일부 여학생들은 정문에서 후문까지 마을버스를 타고 다니기도 한다. 일반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도 여간한 결심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적당히 몸을 움직이기도 하고 적당히 기계의 편리성에 의존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오세훈 교수는 일상생활을 좀 더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 시작된 고민의 해답을 전기자전거에서 찾게 되었는데, 연구를 계속 하다 보니 친환경적인 요소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기자전거의 유용성은 우선 엔진형 오토바이와 비교해보면 그 장점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엔진형 오토바이는 불완전 연소 때문에 자동차보다 더 많은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세훈 교수는 이해하기 쉽게 자장면 배달용 오토바이에 비교했다. 자장면 한 그릇에 4천원이지만, 배달용 오토바이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을 정화시키는 비용은 1만 원 이상이 든다는 것이다. 환경비용을 고려한다면 이는 엄청난 손해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오토바이 소음공해까지 따진다면 그 비용은 더욱 클 것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중국에서는 도심에 엔진형 오토바이의 진입을 금지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국내의 업소용 배달용은 모두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오토바이가 100%다. 또한 전기 오토바이로 중국산이 많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다. 이 중국산 전기오토바이의 최대 출력은 500와트 정도인데 등판능력이 5%정도여서 언덕이 많은 한국지형에서는 적합하지가 않다. 일부 미국 전기 오토바이는 등판능력이 우수하지만 가격이 800만 원 정도로 고가 상품이 대부분이어서 역시 배달용으로는 적합하지가 않다. 일부 한국의 전기 오토바이를 생산하는 업체는 앞뒤 허브형 모터를 사용하고 있는 제품이 있지만 등판능력이 떨어지고 또한 등판 능력이 된다 하더라고 많은 배터리가 소모되기 때문에 배달용으로 적합하지가 않은 실정이다.
기존의 전기자전거도 문제가 많았다. 등판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배터리의 구동전압만 24볼트에서 48볼트까지 끼워 등판능력을 개선하려고 했고 이에 따른 문제점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문제점은 구동 전압을 올려서 등판능력은 좋아지긴 했지만 많은 배터리를 사용해서 자전거의 무게가 엔진형 오토바이 수준으로 무거워지게 된 것이다. 또한 배터리를 직렬로 사용하면서 배터리의 신뢰성에도 문제점이 제기됐다. 또한 파워가 큰 전기자전거는 배터리를 금방 방전시키는 문제가 있었다.
오세훈 교수는 “당시 소비자는 힘이 약한 전기자전거보다는 같은 가격에 오토바이를 구매하는 쪽으로 바뀌면서 전기자전거는 국내에서 자리를 영영 잃는 듯 해보였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전기자전거의 제품들

배달용 전기 자전거 프레임 제작 단계

오세훈 교수가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국내자전거 브랜드인 삼천리자전거와 페달부 3단 크랭크를 개발하면서부터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자전거 구동부에 관심을 갖고 1996년 전동 휠체어용 구동부 개발을 재활공학연구소로부터 의뢰받아 전기모터를 이용한 구동부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만들어내는 데까지 이르게 됐다. 이후 오세훈 교수는 모터와 자전거를 결합한 전기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1998년 이미 일본의 몇몇 업체들이 전기자전거를 출시하고 있었는데, 오세훈 교수는 1999년 삼천리자전거와 공동 프로젝트로 전기자전거 개발에 성공했다. 당시 이 덕분에 산자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기자전거를 사업화하는 데는 실패했다. 구동부 가격이 너무 비싸서 시장 진입에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2단 변속이 내장된 전기 자전거

그리고 2002년, 산업기술재단에서 추진한 초중고 아이디어 경진대회에 지도교수로 참여하면서 오세훈 교수가 지도한 전기자전거가 대상을 수상한 것이 전환점이 됐다.
“앞바퀴를 크게 하고 뒷바퀴를 작게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앞바퀴가 크면 둔덕 같은 장애물이 있어도 쉽게 올라갈 수가 있고, 핸들에 안정감이 생긴다. 뒷바퀴가 작아지면 작은 모터로도 큰 등판능력을 얻을 수 있다.” 이때 발명한 것이 바로 ‘미니로’. 2008년 현재 신형 미니로가 시중에서 판매중이다.
미니로는 동급 전기 자전거 중 최소 중량, 최소 크기, 최대 동력을 자랑한다. 한 번 충전을 하고 페달을 함께 굴리면 최대 40km정도를 갈 수 있고, 전기만으로는 30km를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심플한 구조와 잔고장이 없는 미니로는 오세훈 교수의 분신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전기자전거라고 하면 굉장히 투박한 모양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미니로는 본체를 반으로 접을 수 있어서 자동차 트렁크에도 실을 수 있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도 부담스럽지 않다. 배터리도 어댑터 단자를 직접 연결해 충전하거나 배터리를 분리해서 가정에서 충전할 수도 있다. 출퇴근용, 통학용으로도 유용하고 노인들의 교통수단으로도 적합하다.”

접이식 전기 자전거

오토바이크와 자전거가 하나로, 오토 바이시클
‘미니로’ 뿐 아니라 오세훈 교수가 한참 애를 쓰고 있는 전기자전거가 또 하나 있다. 배달용 오토바이를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진 오토바이시클은 부품 소재 진흥원에서 시행한 프로젝트였다. 개발하는 데만 2년 이상이 걸린 오토바이시클은 페달의 힘과 모터의 힘이 합쳐진 다음 변속이 되는 원리로 움직이게 된다. 모터가 구동될 때 페달이 회전하면 안 되기 때문에 한 방향으로 클러치 베어링이 들어가 있다. 또한 페달을 구동할 때 모터가 구동되면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모터측에도 한 방향 클러치가 들어가 있다. 오토바이시클은 현재 안전검사를 합격했으며 시중에 판매를 준비 중이다. 납 배터리와 리튬이온 배터리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고, 기존 전기자전거의 단점이 개선돼 리튬이온 배터리 하나만으로 평균 60km이상을 주행할 수 있다. 또한 별도의 충전 없이 2~3일을 달릴 수 있는 강점을 지녔다. 또한 배터리 소모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페달 가속 시 파워가 자전거에 전달될 수 있도록 구동장치를 변화시켰다. 오세훈 교수가 꿈꾸는 환경비용에 대한 부담을 낮추면서 경제적인 배달용 전기자전거가 탄생한 것이다.

배달용 전기자전거 디자인

전기 자전거로 만드는 꿈
오세훈 교수는 미니로 뿐 아니라 일반 전기자전거와 배달용 전기자전거를 조만간 세계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전기자전거에만 쏟은 5년의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며 미소를 보였다.
오세훈 교수가 처음으로 ‘미니로’ 전기자전거를 출시한 2003년부터 작년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보기보다는 운동용이나 레저용으로 생각해 판매가 부진했지만 최근에는 급격히 판매가 늘고 있다며 앞으로도 전기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장치선 워크홀릭 담당기자 charity19@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