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사, 리먼에 7억2000만 달러 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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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파산을 신청한 리먼브러더스에 한국의 금융회사들이 총 7억2000만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국내 금융회사들은 리먼이 발행한 채권과 파생상품에 주로 투자했다”며 이렇게 밝혔다.

금융위에 따르면 국내 금융사가 리먼에 투자한 돈은 ▶대출 2800만 달러 ▶유가증권 투자 2억9000만 달러 ▶주식파생결합상품 투자 3억9000만 달러 등이다. 리먼에 투자한 금융사들의 손실 규모는 파산 조건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상당 부분 손실이 불가피하다. 리먼 인수를 막판까지 검토하다 포기한 산업은행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무모했던 인수 시도는 도마에 오르게 됐다.

금융위는 최악의 경우 투자한 돈을 한 푼도 건지지 못해도 금융회사의 경영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 정도 손실은 지난해 말 국내 은행이 올린 당기순이익(134억 달러)의 3%에 불과해 충분히 감내할 수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국제 금융시장에서 돈줄이 마를 것으로 보여 국내 금융회사들이 해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금융회사들은 메릴린치가 발행한 채권 등 금융상품에도 7억2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와 별도로 한국투자공사(KIC)와 하나은행은 올 초에 각각 20억 달러와 5000만 달러를 들여 메릴린치 지분을 사들였다. 금융회사들은 메릴린치의 합병 조건에 따라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KIC와 하나은행이 손해를 볼지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메릴린치를 어떤 조건으로 인수하느냐에 따라 득실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KIC는 BOA가 메릴린치 주식을 주당 29달러에 인수한 점에 희망을 걸고 있다. KIC는 7월에 보유하고 있던 메릴린치의 우선주를 주당 27.5달러에 보통주(7224만3217주, 총 지분의 5%)로 전환했다. 따라서 BOA가 메릴린치를 인수한 가격대로 KIC의 메릴린치 지분을 모두 인수할 경우 KIC는 주당 1.5달러의 이득을 본다.

하지만 BOA와 메릴린치의 합병 비율이 어떻게 정해지는가에 따라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만약 BOA가 메릴린치에 대한 구조조정 차원에서 감자를 하고, 합병 비율을 낮게 정하면 KIC의 손실은 불가피하다.

KIC는 곧 최고투자책임자(CIO)를 미국에 파견해 협상할 계획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미국 금융회사가 어려울 때 지분을 사준 싱가포르 테마섹과 KIC 같은 주요국의 국부펀드에 대해 미국 측이 불이익을 주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나은행도 같은 입장이다. 하나은행은 올 2월 메릴린치 주식 100만 주를 주당 50달러에 산 뒤 주가가 떨어져 장부상으로 손실을 봤다. 하지만 최근 메릴린치의 유상증자 때 싼값으로 110만 주를 추가로 확보해 총 매입 단가를 주당 24달러 선으로 낮췄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협상 결과에 따라 이익을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종윤<기자yoo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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