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週를열며>염치(廉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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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 와서 부쩍 이혼율의 증가,성도덕의 문란,의식주 생활의 과소비,혼례의 사치풍조등 음식.남녀에 관한 세태를 두고 우려의목소리가 높다.인간의 커다란 욕심은 식색(食色)에 있다고 말한다.그렇다고 육신에만 매달려 짐승만도 못한 자들 이 떼를 지어서 우리들 풍속에 망조가 든 것이다.
사람이 금수와 다른 점은 염치를 가졌다는 것이다.인간은 부끄러움을 자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류의 문명을 이룩해 냈고,힘써 일하며 절제를 배워,자연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그러나 수치심을 모르는 자는 욕심을 참아내지 못하여 차마 할 수 없는 무례함을 저지르고 만다.주먹이 앞서고 눈앞의 이익을 위해횡포를 부린다.
우리는 외형적으로만 보아도 짐승과 다르다.네 발로 기어다니지아니하고,두 발로 서서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걸어다닌다.직립(直立)한 동물이기에 머리가 하늘로 향하고 발은 땅을 딛고 서서생활하며,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손을 놀려 만물을 지배할 수있다고 한다.그렇게 남는 손을 통해 문명과 문화를 가질 수 있었다. 한 뼘밖에 되지 않는 우리들 마음은 들여다 볼 수 없어과연 그 속이 어떠한가를 알기가 어렵다.그러나 고대인들은 외형적으로 보아 인간은 큰 대(大)자로 당당하게 곧게 서서 직립해있으므로 우리의 마음도 그 형상처럼 직심(直心)으로 곧아 있을것이라 했다.이 정직한 마음을 한 글자로 합하면 큰 덕(悳)자,바로 덕(德)이 된다.덕이란 어떤 사물에 있어 기본적으로 없으면 그 사물이 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살구열매가 신맛이 없으면 살구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그래 서 정직(正直)이 인간의인간다운 본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바를 정(正)이란 우리의 손가락처럼 다섯 개가 구비되어 있을때 바르다고 한다.육손이로 태어났을 때 그를 두고 불구(不具)라고 한다.비정상인 것이다.이러한 정(正)자를 뒤집어 놓으면 부족하다는 결핍의 핍(乏)자가 된다.항아리에 이 가 빠지면 항아리 주둥이가 둥글지 못해 원만하지 못하고,곧게 걸어가지 못하면 비뚤어진 몸짓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성장하며 인격을 형성하는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주는것은 결손된 환경이다.그릇된 성격은 사람이 서로 주고 받는 애정의 결핍에서 정서를 고루 갖추지 못하는 데서 비롯한다.그래서또한 남과 함께 인정을 나누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세태가 서구풍조의 개인주의에서 기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우리가 살아가면서 보고 듣는 교육환경이 건실하지 못한 데서 생기는 것이다.
지상에는 솟아있는 산이며,굽이쳐 흐르는 강이며,모두 곡선적인형태가 우리들 곁에 있다.이를 직선적으로 고쳐놓는 인위적인 활동은 쉽지 않다.그래서 인간사에는 곡직(曲直)이 많다.그러나 인정을 베풀고 산다면 정직이란 것에도 변통이 없 는 것이 아니다. 옛날 섭공이 공자에게 자랑했다.『우리 마을에 곧기로 소문난 자가 있습니다.그 아비가 양을 훔쳤는데 아들인 그가 증인이되어 고발했답니다.』 공자가 답했다.『우리 마을의 정직한 자는이와 다릅니다.아비는 아들을 위해 그 죄를 숨겨 주고 아들은 아비를 위해 그 죄를 숨겨 주었습니다.그 속에 정직한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절도범을 숨긴다면 범죄사실을 숨기는 것이라 정직하지 못하다.그러나 아비를 고발하는 것은 인정에 배반되어 차마 하지 못할 일이고,수치스런 일이기 때문에 덮어주는 것이다. 우리들 마음에 부끄러움이란 인정에 근본하여 우리의 욕심을 절제할 수 있다.그러나 인정이 결핍될 때 오늘날과 같은 비뚤어진 현상을 마음의 불구자들이 나타낸다.
◇필자 약력▶49세▶성균관대 동양철학과▶同 대학서 문학.철학박사▶전북대.동덕여대교수▶성균관대 유학대학장(현)▶저서:『金阮堂의 철학사상연구』등 서경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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