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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훈범 시시각각

옹정제, 김정일, 그리고 이명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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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청나라 5대 황제 옹정제가 일벌레였던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루 4시간씩만 자고 온종일 정사를 살폈다. 특히 지방관들로부터 수시로 보고를 받았다. 강수량이나 작황, 쌀값의 등락에다 누가 일을 잘 하고 누가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일일이 적어 바치게 했다. 옹정제는 그 상주문을 꼼꼼히 읽고 붉은 글씨로 직접 주석을 달아 돌려보냈다. 매일 20~30통, 많게는 50~60통까지 보고서를 읽고 답했다고 한다. 그중 주요한 것만 골라 책으로 묶은 『옹정주비유지』가 전하는데 112권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다.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생중계를 보던 중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문득 옹정제를 떠올린 것이 꼭 뜬금없는 상상만은 아닐 터다. 우리 대통령이 잠 없고 부지런한 건 설명이 필요없고, 김정일 역시 모습을 감추기 전 과로와 스트레스가 쌓였던 흔적이 역력한 까닭이다. 그는 올 들어 93회나 현지지도에 나섰다고 한다. 그것도 6월에 11회, 7월에 11회, 8월에는 쓰러지기 전인 14일까지만 14회로 갈수록 그 횟수를 늘려나가던 중이었다.

국가지도자가 정책집행 상황을 점검하는 현지시찰은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일반적 통치행위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행사로 그칠 뿐이다. 그런데 북한은 다르다. 현지지도는 가장 일반적이고 효과적인 정치행위며, 북한 사회를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장군님이 직접 현장을 찾아가 독려하지 않으면 북한 사회가 굴러가지 않는다는 얘기다. 다른 나라에 비해 무게가 실리고 횟수가 잦은 이유다. 김정일 스스로도 “나라고 명절날 하루만이라도 가족들과 쉬고 싶지 않겠나” 라고 하소연할 정도였다는 거다.

옹정제도 그랬다. 철저한 1인 체제로 스스로 모든 것을 관리하고 지시했다. 그는 관료를 믿지 못했다. 관리들에게 따로 보고하게 하고, 서로 비교해 허위가 있는지 확인했다. 보고가 마음에 들면 격려가 있었지만 미흡하면 호된 질책이 이어졌다. “금수라도 너보다 낫다” “무능하고 욕심만 많아 헛다리를 짚는다”-.

황제한테 이런 소리를 듣고 오금이 저리지 않을 강심장이 있었을까마는 그렇게 닦달해야 했던 황제 스스로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을 리 없다. 옹정제는 한족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해 청대 최전성기인 강희와 건륭 시대를 잇는 돌다리가 됐지만 아버지(61년)와 아들(60년)의 재임기간에 턱없이 모자란 13년만 제위에 있다 57세의 나이에 병사하고 말았다.

김정일의 스트레스가 옹정제보다 작았을 리 없다.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서 핵을 들고 줄타기 하고 자신이 얼굴을 내밀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 체제 속에서 한계도 여러 번 느꼈을 터다. 거기에 사랑하는 막내아들이 의문의 사고로 중상을 입었다면 어찌 혈압이 오르지 않겠나 말이다.

 허무한 건 1인 체제의 말로다. 옹정제가 죽자 많은 권한이 관료집단 손으로 되돌아갔다. 북한 역시 김정일이 죽고 나면 한동안 시스템이 오작동할 게 분명하다. 그래서 더 걱정스러운 우리다. 우리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도 그들과 다르지 않아서다. 불확실성 사회와 맞대고 있는 만큼 지도자가 그 불확실성을 흡수할 큰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디테일에만 몰두하는 것 같아 하는 소리다. 국민과의 대화에서 시시콜콜 답변을 잘 하면서도 그 효과를 일거에 묻어버릴 큰 뉴스를 예상해 방송 날짜를 바꾸지 못했듯 말이다. 그 정도이길 망정이지 좀 더 큰 뉴스였다면 어쨌을까 생각하면 온몸의 털이 쭈뼛 선다.

옹정제는 기둥에 이런 대련(對聯)을 붙여놓고 마음을 다잡았다. ‘천하를 다스림이 나 하나에 달렸다(原以一人治天下)’ ‘내 한 몸 위해 천하를 수고롭게 하지는 않으리라(不以天下奉一人)’ 홀로 분주했어도 대사를 그르치지 않은 이유다. 김정일과 우리 대통령의 좌우명이 뭔지는 몰라도 따로 마음에 담아뒀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이훈범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