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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주말 산책] ‘종이배 사나이’는 어디로 갔을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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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 35면

나는 그의 얼굴을 모른다. 몇 달 전 어느 날부터 그는 지하철역 계단참에 큼지막하고 낡은 셔츠를 뒤집어쓴 채 때로는 엎드려서, 때로는 웅크려 앉아 있었다. 그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는 틈에 자리를 잡는 것 같다. 또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도 인기척에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그러니 거기를 지나다니는 사람 중에서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다. 악착같이 얼굴을 가릴 뿐, 가령 지난여름의 더운 날, 반바지 아래의 장딴지 같은 데를 드러내기도 해서 나는 그가 꽤 건장한 청년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지하철역에는 여덟 군데 계단이 있는데, 그가 택한 계단은 가장 한적한 곳이다. 수입이 사뭇 줄 텐데 그걸 감수하면서 유동인구가 적은 곳을 택하다니, 어쩌면 그에게 대인기피나 광장공포 기질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적선을 구하려 거리에 나서다니 딱한 일이다. 대체 몇 시간이나 그곳에서 보내는 걸까? 하루에 수입은 얼마나 될까? 그의 머리맡에 놓인 건 신문지로 접은 종이배다. 볼 때마다 텅 비어 있다. 그가 바지런히 주머니로 옮겨서 그런 거라면 좋으련만.

그런데 그는 왜, 가령 깡통이나 상자 같은 게 아니라 종이배를 놓고 있는 걸까? 언젠가 바람이 몹시 부는 날 계단참에 막 발을 내려딛는데, 그가 앉은 자리 반대편 벽으로 종이배가 휙 날아갔다. 그러자 그는 예의 그 쓰개치마 같은 셔츠를 한 손으로 꼭 여민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 손을 뻗고 허둥지둥 알량한 종이배를 따라가 주워오는 것이었다. 왠지 울컥해서 그보다 먼저 달려가 그 놈의 종이배를 꾹 밟아버리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는 내 난폭한 심사에 아랑곳없이 손바닥보다 조금 클까 말까 한 종이배를 살뜰히 제 앞에 놓았고, 나는 좀 미안하고 울적해져 종이배 안에 푼돈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개찰구를 향해 걸으며 곰곰 생각해봤다. 저 친구가 신문지로 접은 종이배를 적선함으로 쓰는 건 휴대하기 편해서일 거야. 종이배는 납작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지. 모자도 주머니에 구겨 넣을 수 있지만, 모자는 글쎄, 아는 사람 눈에 자신을 띄게 만들 수 있으니까 내놓고 싶지 않겠지. 저 친구한테 마땅한 모자가 없을 수도 있고. 나름 소신 깃든 장비라는 판단이 서자 더 이상 그 종이배가 거슬리지 않았다.

워낙 인적 드문 곳이라 처음 그를 봤을 때, 그가 곧 실수를 깨닫고 자리를 옮길 줄 알았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네 번, 볼 때마다 이물감이 줄어들더니 이제는 그가 의당 있을 곳에 있는 것 같다. 꾸준히 터를 잡는다는 건 그런 거다. 원한다면 아마 그는 그곳에서 편지도 받아볼 수 있을 것이다. 좀 볼썽사나운 모습이지만 늘 그 자리에 있는 그에게 친숙해진 사람이 이제 제법 쌓였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만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도 생겼을 거고, 다른 걸인을 볼 때면 무심결에 그를 떠올리는 사람도 생겼을 것이다. 혹 그에게 볼일이 있다면 어디로 가면 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는 이제 우리한테 아는 사람이 됐다.

추석이 코앞이니 오늘은 2000원쯤 넣어야지. 지갑을 꺼내며 계단을 내려갔다. 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그를 못 봤다. 어디 아픈가, 추석이라고 고향집에라도 내려갔나, 아주 자리를 뜬 건가…아주 자리를 떴다면, 형편이 좋아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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