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국사 전공 학자가 한국 상고사를 흔들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9호 15면

『한국고대사신론』의 저자 윤내현 단국대 명예교수는 원래 중국 고대사를 전공한 학자입니다. 윤 교수의 한국사 연구는 중국 은나라에서 건너와 고조선의 왕이 되었다고 알려진 ‘기자’라는 인물에 대한 1983년 논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중국 고대사에 대한 폭넓은 연구가 자연스럽게 고조선에 관한 연구로 이어진 것이죠. 하지만 ‘기자’를 실존했던 인물로 그린 그의 연구는 기존 학계로부터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의 연구가 기존 통설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중국사를 전공한 사람이 왜 한국사에 손대느냐”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죠.

그의 연구에 따르면, 단군조선은 귀족과 평민 사이의 신분차별이 없고 그 권역은 랴오둥반도까지 이른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매우 부강한 나라입니다. 그에 반해 기존의 통설은 고조선의 권역을 평양 일대에 국한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죠.

윤 교수의 주장들은 사실 광복 이후 재야 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던 것입니다. 그들의 문제 제기를 무시해오던 주류 학계는 윤 교수의 실증적 연구를 완전히 무시할 수가 없어 “고조선이 요동반도를 포함한 권역에서 평양 일대로 축소됐다”고 기술하는 등 기존 통설에 수정을 가하게 됩니다.

윤 교수의 연구는 민족주의적인 사관에 적지 않은 힘을 실어준 셈인데, 사실 ‘사료와 실증’을 중시하는 그 스스로는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학자는 아닙니다. 한국사를 둘러싼 진보-보수 진영의 갈등이 커지고 있는 요즘, 이념을 뛰어넘는 실증주의의 힘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