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칼럼>우리들의 우울한 사회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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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겨울 어느 날까지 8년반 동안 나는 여덟시 반쯤에 집을나와 1호선 전철을 타고 출근하는 것을 대체로 규칙으로 삼아왔다.약 1시간10분 동안의 초만원 전차 안과 바쁜 도로 위는 내게 그날 쓸만한 논설을 생각해 보는데 가장 탄 탄한 분위기를제공해주는 시공(時空)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더 이상 계속하기 어렵게 되어 갔다.젊은 사람들 틈에떼밀리는 바람에 손잡이를 잡았던 손목과 팔꿈치를 삐는 일이 몇차례 거듭되었다.만원 전차 안에서 떼밀려 다치는 것은 누구 탓인지 가릴 수가 없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상처를 받게 되었을 때보다 내가 가해(加害)하는 힘의 최종 전달자 자리에 놓였을 때다.대부분의 승객들은 만원 출근 전차의 「우울한 사회학」에 익숙해 있는지라 그런일에 사과하지도 않고 받을 생각도 않는다.그러나 성적(性的) 괴롭힘에 대해 예민한 두려움을 지닌 여성이 떼밀림의 피해자가 되었을 경우는 다르다.그들은 출근 전차안의 떼밈은 개인에겐 무죄(無罪)일 경우도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여유를 때때로 잃는다. 아침부터 재수가 악순환에 빠지는 날이 지난 겨울 며칠 간격을 두고 찾아왔다.악순환이라고 한 것은 떼밀리게 되면 그 전보다 힘이 약해져 그런지,혹은 손목을 삔 일 때문에 그런지 손잡이를 놓아 버리게 되고 그래서 옆에 있는 승객에게 세게 부닥치거나 안넘어지려고 그 승객을 끌어안는 폐를 끼치는 일이 생기는것을 말한다.상대방이 여성인 바람에 졸지에 「성추행범」 누명을쓰고는 피해자의 크지는 않았지만 능멸적인 목소리로부터 괴로운 힐난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런 일이 내게 닥치지 않게 하려고 늘 조심 조심 했는데도 말이다.
이래 저래 승용차를 몰고 출근하기로 결정했다.지난 8년반 동안 스스로 택해 즐기던 전철 출근을 그만 둔 것에 더해 공용교통수단을 이용하자는 캠페인마저 가로 늦게 정면으로 거스르는 짓이었다.8시 시간대에 우리집에서 승용차로 출발하면 직장까지 2시간 이상 걸리는 것이 예사다.그래서 5시50분 집을 출발하기로 했다.30분이면 회사에 도착한다.
겨울의 오전5시50분은 아직 캄캄하다.학생들에게는 방학 중이었는데 단지(團地) 대문을 채 나서기 전에 아마 새벽 과외공부가는듯 가방을 멘 중학교 여학생 둘을 며칠동안 스쳐 지나갔다.
이름은 모르지만 1백40여 가구가 사는 작은 단 지라 얼굴은 알고 있었다.태워주는게 좋겠다 싶어 하루는 그들 옆에 차를 세우고 타겠느냐고 물었다.어이없는 일이 생겼다.한 여학생이 내 쪽을 향해 몸을 돌려 무어라고 말을 하려는데 다른 하나가 가던방향에다 얼굴을 고정시키고는 옆도 돌아보지 않은 채 동행이 말하려는 것을 막으면서 타지 않겠다는 표시로 팔을 펴고 손을 가로젓고는 이어 「그냥 가시라」고 손가락만 대문 쪽을 가리키는 것 아닌가.
참 못돼먹은 애라는 생각이 들었다.전차 안에서 나를 성추행자로 몬 젊은 여성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그런데 이 생각이 변했다.요즘 잇따라 보도되고 있는 미성년 여자를 상대로 한성범죄 기사를 읽고는 짐작하게 되었다.전에는 활 동이 불필요했던 여성의 가칭(假稱) 「독한 계집애」 유전인자가 자위(自衛)를 위해 특별한 개인들 안에서 왕성한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여성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모든 남성에게는 모욕적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표시함으로써 아예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 그것이다.노인이나 친척이라고 우호적 차별을 해줄 것이 없다.평창의 어느 중학교 1년생 Y양은 72세 난 세든 집 주인 , 그에 앞서 자기의 친삼촌에게 강간을 당하지 않았던가.미성년자 성폭행은반반한 가족 조직의 보호 울타리가 없는데서 자생한다는 결론을 우리는 최근의 사건들에서 보았다.범죄는 자연의 폭력과 유사한 점이 많다.진공이 생기면 주위의 공기 가 폭발적으로 모여 든다. 태풍이나 허리케인,사이클론이 발생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가족 조직이 보호하지 않으면 자신이 보호할 수밖에 없다.「독한 여자」는 「속옷 마를 날 없는 인정많은 년」 보다 당사자로서는 더 불행할지도 모르는 대안이지만 이 성범죄 시대를 살아갈수 있는 「적자(適者)」일지도 또한 모른다.아무도 혼자서 승용차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다.모두 「우리들의 우울한 사회학」이란 이름의 진화론적 만원 전철을 타고 어디론가 정한 역을 향해가고있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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