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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난 스트레스 … 한여름에 쓰러진 아버지와 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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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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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주석은 묘향산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하다 죽음을 맞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함경도 현지시찰을 강행한 뒤 쓰러지게 됐다.”

북한 내부 동향을 추적 중인 한 정보관계자는 11일 두 사람 모두 여름철의 과중한 통치 활동 중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최고권력자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는 부담에다 삼복더위까지 겹치면서 쓰러졌던 것이란 얘기다.

김정일 위원장은 7~8월 강원도와 함경남도의 군부대와 산림경영소 등 경제시설을 잇따라 찾았다. 군부를 다독이고 경제난 극복을 독려하기 위해 최고지도자가 직접 현장을 찾는 이른바 현지지도였다. 이때는 북핵 문제가 다시 꼬여 북·미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어려워지는 상황이었다. 남북 문제도 최악으로 치달아 식량 조달도 힘들어졌다.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북한으로 유입되는 달러 현금도 돈줄이 말라버리는 등 김 위원장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란 관측이 가능하다.

김일성 주석은 사망 직전 더 극한 상황이었다. 1994년 6월 미국의 북한 핵 시설 폭격 검토로까지 치닫던 위기는 같은 달 17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으로 겨우 불을 껐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의 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이 합의된 상황이라 준비도 시급했다. 여기에 피폐한 경제는 골칫거리였다. 사망 며칠 전 경제부문 책임일꾼 회의에서 그는 극도로 흥분했다고 한다. 선박공업부장(장관급)을 일으켜 세워 “몇 해 전 대형 짐배(화물선) 100척을 짓겠다고 하더니만 지금 해놓은 게 왜 아무것도 없느냐”며 다그치기도 했다.

80세가 넘은 고령에 한쪽 눈을 수술한 그는 시력도 시원찮았다. 결국 묘향산 특각(전용별장)에 머물던 그는 갑자기 심근경색 증세를 보였다. 때마침 내린 폭우로 헬기 후송이 늦어져 손도 쓰지 못한 채 숨진 것으로 한·미 정보당국은 감청자료 등을 토대로 결론 내렸다.

두 사람은 후계자 준비 과정에선 큰 차이가 난다. 김일성 주석은 아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기 위해 치밀한 채비를 했다. 74년 김정일 위원장을 후계자로 공식 지명하고 20년간 수업을 받도록 했다. 급작스러운 죽음에도 불구하고 권력 누수가 거의 없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업적 중 하나로 “혁명의 후계 문제를 원만히 해결한 것”을 거론할 정도다.

이에 반해 김정일 위원장은 후계 문제에 분명한 언급이 없었다. 오히려 2005년 12월 후계자 논의를 금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김정일의 권력장악에 문제가 없고 군부에도 이상 징후가 없다는 관계 당국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 위기설이 끊이지 않는 것도 후계 구도가 오리무중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 사망 하루 반나절 만에 평양방송을 비롯한 관영매체를 통해 사실을 공개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과 관련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하지만 중국 등을 통해 소문이 빠르게 유입되고 민심의 동요가 나타날 경우 제한적 공개로 수습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 경우 “김정일 위원장이 인민을 위한 현지지도를 벌이다 과로로 쓰러진 것이란 식으로 선전하고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경우 ‘수뇌상봉’(정상회담)을 위해 준비한 통일 관련 문건을 검토하다 집무실에서 쓰러졌다고 밝혀 왔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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