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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e Earth Save Us] 농약 대신 ‘보약’ 먹여 벼농사 짓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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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경남 고성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허주씨가 5일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생명환경농법을 설명하고 있다.

 5일 오후 경남 고성군 거류면 송산리 들녘. 농부 허주(61)씨는 자신의 논에서 누렇게 익어가는 벼의 수확을 앞두고 물 빼기 작업을 하고 있었다. 45년간 논농사를 지어온 허씨는 2006년 전국 쌀 품평회에서 금상을 받은 ‘베테랑’이다. 그의 논은 3㏊다.

허씨는 올해 완전히 새로운 농법을 도입했다. 농약 대신 왕우렁이와 미꾸라지, 비료 대신 한방 영양제와 녹즙을 쓰는 ‘생명환경농법’이다.

지난겨울 허씨는 밭에 콩과 식물인 자운영을 심었다. 공기 중의 질소를 암모니아로 바꾸는 자운영은 ‘땅심’을 높여준다. 활엽수림에서 채취한 토착 미생물에 고두밥·등겨를 섞어 배양해 논에 뿌리기도 했다.

모내기 후에는 작물에 영양소를 공급하기 위해 당귀·계피·감초·생강·마늘·쑥·미나리를 흑설탕으로 우려내고 발효시켰다가 묽게 희석해 논에 뿌렸다. 20L 한 단지면 1㏊를 뿌릴 수 있다. 꽁치·고등어 같은 등 푸른 생선의 아미노산도 넣어줬다. 소뼈·돼지뼈에서 추출한 인산칼슘과 계란·굴껍질의 칼슘도 들어갔다.

허씨는 “논에 뿌려주는 발효액은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해서 비용을 별로 들이지 않았으며, 겨울 농한기 때 미리 만들어 놓았다”고 말했다. 왕우렁이와 미꾸라지 때문에 다른 논보다 백로가 더 많이 찾는다.

일반적으로 논 3.3㎡당 벼 70포기를 심지만 허씨는 45포기만 심었다. 그래도 수확량은 더 많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삭당 쌀알이 150~200개로 일반 농법의 70~80개보다 많기 때문이다. 허씨는 “뿌리가 튼튼해져 바람에 강하다”며 “수확이 10% 정도 많고 무농약이라서 쌀값도 일반미보다 20% 비싸게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가마니(80㎏)에 21만원을 받고 수도권의 한 공장 식당에 모두 판매할 예정이다.

◆고성군의 친환경 벼농사=허씨의 생명환경농업은 고성군의 브랜드다. 충북 괴산의 자연농업생활학교에서 배워온 농법이다. 지난해부터 괴산에서 500여 명의 농민이 교육을 받았다. 이학렬 군수도 올 초 5박6일간 한 시간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고성군은 올 1월 생명환경농업 실천을 선언하고 연구소도 설치했다. 올해 268가구가 논 163㏊에 이 농법을 적용했다. 지난해까지 참다래 재배와 50㏊에 적용해 성공을 거둔 고성군이 자신감을 얻어 전국 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도입했다. 고성군 농업기술센터 허재용 소장은 “2012년까지 고성군 내 전체 논 7500㏊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40년 전 개발된 자연농법=고성군에 생명환경농법을 가르친 이는 자연농업생활학교 조한규(74) 소장이다. 그는 1967년 자연농법을 개발해 국내는 물론 일본·중국·베트남·필리핀에도 보급했다. 아시아생산성본부 전문위원이기도 한 그는 “벼도 자손을 퍼뜨리려는 게 본래 목적인 만큼 기본권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벼를 넓은 간격으로 심고 화학비료가 아닌 필요한 영양원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350차례 강습을 통해 전국 1800곳, 3만여 농가에 자연농법을 퍼뜨렸다.

  경남 고성=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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