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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야독 … 마을誌 펴낸 중졸 농사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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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고향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의 가슴에 고향의 모습을 새겨 주고 싶었지요."

상주시 병성동 주민 오세경(吳世慶.61.농업.사진)씨. 그가 고향 마을의 역사를 담은 '병성동지(屛城洞誌)'를 28일 펴냈다.

187쪽인 병성동지에는 110호 4백여명이 사는 마을의 유래와 그곳에 살고 있는 성씨, 특산물, 문화유적, 마을 민요, 인물, 생활상 등 마을의 모든 것이 빠짐없이 기록돼 있다. 특히 역대 이장과 부녀회장 등의 이름도 모두 실려 있다. 책 곳곳에 넣은 50여장의 관련 사진은 마을의 특성을 한눈에 보여 준다.

오씨는 출간된 350권을 동민에게 나눠 주고, 상주문화원.국립도서관.상주시청 등에도 보내 자료로 활용토록 할 계획이다.

그가 책을 펴내기로 마음 먹은 것은 2001년 12월. 젊은이들이 하나 둘씩 대도시로 떠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을 위해 '고향의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출판비용 400만원은 마을 동료 모임인 '병풍회'에서 대기로 했다.

그는 "우리 마을은 후백제왕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 장군이 살았던 곳"이라며 "이런 마을의 내력을 후대에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듬해 1월 오씨는 본격적인 집필을 시작했다. 8000평의 논과 과수원을 가진 그는 낮엔 논.밭에서 일하고, 밤엔 역사책을 뒤지며 원고지를 메워 나갔다. 일이 많지 않은 날은 카메라를 메고 뒷산의 사벌왕릉.병성산성 등을 누비며 마을 모습을 렌즈에 담았다.

그의 학력은 중졸이다. 하지만 젊었을 때부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은 덕에 책을 쓸 수 있었다. 외아들이었던 그는 6세때 아버지를 잃은 뒤 농사일로 가계를 꾸려가면서 한문서적과 각종 교양서적을 탐독하며 향학열을 불태웠다고 한다.

원고의 교정은 중등교사인 아들 진석(37)씨와 조카 광석(36.공무원)씨가 맡았다. 마침내 그가 쓴 200자 원고지 150매와 손수 찍은 사진 50여장이 책으로 만들어졌다. '주경야독'한 지 2년 4개월만이다.

그는 "어렵게 낸 책이어서 그런지 자식 같은 생각이 든다"며 "앞으로 우리 마을의 누군가가 나서 지금까지 기술한 이후의 내용을 추가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오씨는 "고희때는 힘들었던 내 삶을 정리하는 자서전을 펴낼 작정"이라고 말했다.

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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